무소유

by 청목

“집안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나요!”

그간 길고 긴 여름이 물러가고, 오랜만에 서늘한 가을 아침을 맞을 때 아내가 말했다.

말에 혹시나 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 보았다. 거기 난 화분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바로 거기 난 화분에서 꽃대를 올려 그렇게 난향이 솔솔 불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베란다 한쪽에 밀쳐놓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남모르는 설움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처럼 그윽한 향기를 내뿜으며 아주 의연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올해같이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그 여름날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때로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일주일도 좋고, 열흘 만에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은 하루 종일 내려 쪼이는 뜨거운 햇볕과 타는 목마름을 스스로 견디고

버텨내야 했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기를, 법정 스님의 <무소유> 글을 보면 스님은 거기 온갖 정성을 다해

난을 돌보아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햇볕을 너무 쪼여도 안 되기에 밖에 내다 놓았다가도 난이 염려되어 안으로 들여놓고,

멀리 출타를 했다가도 난이 생각나서 하던 일을 멈추고 되돌아와 돌보아줄 만큼 관심을

쏟으셨다고 한다.


집안 베란다이지만 한여름 햇볕은 그대로 내비치고 하루 종일 땡볕과 씨름했을 것이다.

그 무더위를 어떻게 다 이겨내고, 아주 보란 듯이 꽃대를 올려 그렇게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을까? 죽지 아니하고 버티어 살아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고 이와 같이

소중한 꽃을 피워낼 수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고운 자태와 꽃에서 발하는 맑고 깨끗한 그 향기의 그윽함이여!

법정 스님도 그 난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싱싱한 난초는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한다’라고,

나로서는 난 화분을 특별히 애지중지하거나, 그렇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들여 본

일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난초, 스스로 아름다운 자태의 꽃을 피워 올리고, 맑고 깨끗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어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그 자태만큼이나 품위 있고, 무엇보다 그와 같이 맑고

그윽한 향기를 어디에서 맡을 수 있겠는가!


그저 한낱 식물에 지나지 않지만 어쩌면 난,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생에

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마치 법정 스님이 죽비로 내 등을 내려치듯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