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가는 길

<나그네의 길동무 다람쥐>

by 청목

오세암!

지난번 산행에서 부득이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오세암(五歲庵)’ 본래의 유래가 있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 <오세암>으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널리 알려졌다. 그때가 5월인지라 산행하기에는 아주 딱 좋은 날씨였다. 전날 미리 도착하여 숙박을 정하고 짐을 푼 다음, 산책로를 따라 다리를 건넜다. 거기 바로 ‘오색 약수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 물맛이 독특한 탄산수였다. 오색약수를 거쳐, 그 옛날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나오는 ‘선녀탕’을 내려다보았다. 그 맑고 푸른 물빛으로 보아 틀림없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짐을 챙겨 차로 한계령을 넘었다. 해발 910m에 이르렀을 때, 귀가 먹먹해왔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워낙 산세가 험한 데다 일차 선으로 셔틀버스 운행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위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아래 개울 쪽으로는 거의 낭떠러지인지라 처음 도로 뚫는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 밖 계곡 물소리는 울리듯 크게 들려왔고, 전날 선녀탕에서 본 물빛 그대로 물이 어찌나 맑은지 거의 푸른빛이 돌았다.

이번에는 막차 시간에 쫓겨 서두르지 않기 위해 백담사에서 바로 ‘오세암’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 산행처럼 대청봉을 거쳐 오느라 지친 상태도 아니었고, 이제 시작이니 몸도 가벼웠다. 점심은 간단한 간식거리로 대신했다.

백담사에서 시작된 길은 그렇게 경사가 급하지 않고 완만했다. 중간에 ‘영시암’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인 다음,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봉정암’, 또 다른 한 길이 바로 '오세암'에 이르는 길이었다.

‘오세암’ 본래 이름은 ‘관음암’이었다고 한다.

옛날 한 스님이 부모를 잃은 조카를 거두어 암자로 데려왔다. 어느 해 겨울 초입, 식량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어린 조카의 밥을 충분히 지어 놓고,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놀라’ 이르고 쌀을 구하러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여 길이 막히고 그 길은 한 번 막히면 봄이 될 때까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스님은 조카가 걱정이 되어 눈보라를 뚫고 가다 쓰러졌고 마침 산속 나무꾼이 발견하여 업고 내려왔다고 한다.

결국 여러 날이 지나서야 어렵게 산 고개를 넘어 암자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어린아이의 불경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고 한다. 그렇게 다섯 살 어린 동자가 '성불成佛'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의 ‘오세암’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정채봉 선생이야말로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평생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왔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동화 <오세암>을 엮어 내지 않았을까 여긴다.

당시, 어린 조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이 급한 스님이 눈길을 헤치며 올라갔을 ‘오세암’ 가는 길은 점점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저곳 암자를 돌아보고, 이제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이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저 지쳐서가 아니다. 다섯 살 어린 동자가 ‘성불’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아이가 스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울다가 지치고 지쳐 그렇게 잠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려오는 길, 저만치 길옆 바위 위에 오뚝하니 서 있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와 마주쳤다. 나는 얼른 배낭 속을 뒤져 가져온 땅콩을 꺼내 가까운 바위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동자승의 '성불'까지는 잘 모르겠고, 나처럼 힘없이 터덜거리고 돌아가는 나그네의 하산 길에 길동무가 되어주려고 다람쥐로 환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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