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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Aug 02. 2019

기묘한 필리핀 마닐라 여행

일단 떠났다. 뭔지 잘 모르는 상태 그대로

남국에서 찾은 무릉도원

필리핀 마닐라,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소음이 여과 없이 들리는 10평 정도의 원룸, 가벽으로 막아놓은 침실 안쪽에서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영어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가 도란도란 들린다. "What did you have for lunch today?"로 시작된 그 대화 소리가 슈베르트보다 더 잔잔하고 서정적이다. 등 뒤로 들리는 두 사람의 달콤한 영어 대화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자그마한 러그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앞으로 저 달콤한 음률은 3시간은 이어질 것이다. 약속된 구원의 시간이다.


이 소박하지만 견고한 행복을 위해 생각보다 멀리까지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며 애써 툭툭 털고 지나가기도 했다. 나와 아이 둘 뿐이다. 연하게 넘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고행이 아닌 즐거운 모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이가 나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눈물 나도록 당혹스러운 순간마다 나를 잡아준 아이의 작고 가녀린 손이 그토록 큰 위안과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실,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아이 눈에 비치는 나는 무엇이든지 다 알고, 모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내는 대단한 엄마였다. 그러나 여기 낯선 마닐라에서 그와 같 우월한 지위는 더이상 유지수 없었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 아이는 그 대단했던 엄마와 별다른 차이 없이 동등하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받았던 모양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우리 둘의 관계가 자연스레 재정립되었다. 아이는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든든한 여행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채 막연한 낙관적 희망과 함께 하는 기내식



수상한 여행의 정체

내가 거쳐 온 일련의 과정을 보통 “여름·겨울방학 영어캠프” 혹은 “조기 영어교육 체험”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번 필리핀에서 보낸 한 달간의 여행은 아이의 영어교육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영어캠프나 단기 영어 프로그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는 관련 에이전시나 어학원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일정과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설계했다.


그렇다.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통해 여기 필리핀에 왔다. 이런 방법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비용절감과 자율성의 확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불확실성과 위험 감수라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럼에도 나와 내 아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스스로 알아보고 설계하는 ‘자율형 영어캠프 (혹은 ‘배낭여행형 영어캠프’)’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또한 그렇게 믿고 싶다) 단순히 영어 실력의 향상만을 기대했던 초기와는 달리 막상 이곳에서 아이와 둘이 모든 일상을 함께하면서 더욱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영어 교육, 그것이 문제로다


인터넷과 서점에는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에 비하면 이 글이 제공하는 정보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차라리 여행기에 가깝다. 그래, 아이와 함께하며 낯선 곳에 던져져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느끼는 여행기이다. 사실 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보호자로 따라나선 내가 (잡다하게) 느낀 게 더 많았기에 휴면 상태에 있던 브런치 계정을 일부러 살려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사소한 경험을 보다 많은 부모들과 나누고 싶었다.


특히 나처럼 갈팡질팡하는 극히 평범한 부모들과 함께 이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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