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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Aug 20. 2019

20일: 망고와 바나나

바나나의 재발견 (망고는 늘 맛있다)

두 번째 야외수업

오늘 오전 수업은 집시와 함께 3시간 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평소처럼 수업이 이루어지다가 중간에 집시는 아이와 함께 야외수업을 할 생각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미 첫 번째 야외수업이 별 탈 없이 이루어졌던 터라 나는 흔쾌히 좋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답했다. 창 밖을 내다보니 마침 날씨도 쾌청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부는 것이 야외 수업하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집 안에서 나는 약간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오늘도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서 돌아온 아이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집시가 아이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사준 것이다. 수업의 목적으로 마트에 들어가 어떤 물건이 있는지,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영어로 배우고 난 뒤 둘은 간식을 사서 함께 나눠먹으며 더욱 즐거운 수업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다. 조만간 기회를 만들어 집시에게 오늘의 일을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팔라르 시장(Palar Market)

오후의 메이 영어 수업까지 중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아이와 함께 재래시장에 가기로 했다. 굳이 아이를 데리고 가려한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것 같아서 핑계 삼아 외출을 시키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 사이 나는 구글 지도를 통해 지난번 내가 갔던 재래시장이 '팔라르 시장(Palar Market)'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번듯한 이름까지 있는 시장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우리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팔라르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팔라르 시장(Palar Market) 입구


오후의 시장은 정말 한산했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몇 군데의 채소가게와 과일가게만 드문드문 장사를 하고 있었다. 집시에게 들어보니 이런 재래시장은 대체로 아침 시장으로 운영돼서 새벽 5시쯤 시작해 오전 11시가 지나면 벌써 마감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팔라르 시장을 찾아갔다는 말에 집시는 놀라워했다. 마닐라에 살고 있는 현지인에게도 팔라르 시장은 복잡하고 정리가 잘 안된 곳이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현재로는 SM 몰 아니면 팔라르 시장밖에 아는 곳이 없었기에 오늘도 몇 가지 과일을 사기 위해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트라이시클에서 내린 아이는 정말로 놀란 모습이었다. 그동안 다녔던 쇼핑몰과 도심의 거리 그리고 레지던스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눈 앞에 갑자기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계속 빨리 집으로 가자며 불안한 목소리로 졸라댔다. 그래서 재빨리 과일가게로 가서 망고와 바나나를 골라 돈을 치르고 잔돈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순간 강한 바람이 이 거리를 휩쓸었다. 온갖 먼지와 모래가 갑자기 아이를 덮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아이는 더 큰 목소리로 그만 가자고 말했고, 마침 거스름돈을 받은 나는 바로 앞에 대기 중이던 트라이시클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팔라르 시장(Palar Market)의 한산한 오후 풍경


사진으로 보는 거리 풍경은 낡은 건물과 혼잡한 모습으로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동네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경험해본 이 공간은 꼬마 아이들부터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아이와 함께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겁을 먹은 아이는 낯선 이 곳에 더 이상 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망고


시장에서 사 온 망고는 저번보다 크기는 컸지만 새콤한 맛이 조금 강했다. 하루나 이틀 후숙 시켰다가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자두처럼 새콤한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번 망고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필리핀의 망고가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필리핀 현지의 바나나가 참으로 달고 향긋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흔하디 흔한 바나나를 굳이 여기 마닐라까지 여행 와서 먹을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30일간의 장기 체류를 하면서 바나나는 여러모로 효용가치가 높은 과일이기에 꾸준히 사서 먹게 되었다. 과육이 더욱 노란빛을 띠고 식감이 찰지면서 맛이 더 달았다. 바나나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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