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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아 Apr 24. 2024

나는 지금 우회중

중년의 테피스트리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어깨를 확인한다. 통증으로 하루 운세를 보듯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은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겠군, 때로는 오늘은 장을 조금만 보고, 집에 들어앉아 있자고 다짐을 한다. 통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메타버스이길 바라며 일어난다. 회전근개염 여파가 팔꿈치, 허리로까지 오는 신호를 감지하고 필라테스, 요가를 멈춘 지 2주, 다시 기약 없는 방학에 들어갔다. 정형외과 진료는 마지믹 보루로 하고 있다.     

집안일은 생존만을 위해 미니멈으로, 브런치 글쓰기도 잠시 멈추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책도 다시 빌려 읽기 시작했고, 정든 님도 못 알아본다는 봄볕을 듬뿍 맞으며 매일 산책을 한다. 우리 집 강아지가 제일 신이 나있다.     


이 봄 멈추어 의기소침할 줄 알았는데 감사할 일이 쏙쏙 자라난다. 쉬고 있으니 난생처음 쑥 뜯을 일도 생기고, 주마다 꽃놀이를 하며 가장 봄을 만끽해 본 것 같다. 꽃놀이 가기 위해 장거리 운전에으로 팔이 안 낫는 건 집에서 비밀이다. 또 주변에 몸도 마음도 아픈 이들이 점점 많아져 명상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내가 치유되는 효과를 보았다.     


‘나는 우울해’,‘나는 화가 나’의 일상 모드에서 ‘우울한 기분’,‘우울함’,‘화가 남’‘화’로 명명하는 명상 모드로의 전환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합니다. 화나 우울이 내가 아닌 감정에 불과하고 그 감정으로 파생한 비관적인 생각들도 내가 아니라는 통찰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마음을 바라보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안아주는 힘도 생겨납니다. 내면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늘 깨어 살펴보는 명상 모드가 몸에 배고 생활화됩니다.    
 
호흡을 바라보다가 몸의 특정 부위에 어떤 감각이 뚜렷하게 느껴지면 그 감각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늘 긴장되어 있거나 뭉쳐있는 신체 부위에 주의를 기울이며 몸을 살펴봅니다. 긴장하는 부위를 마주하면서 이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호기심으로 살펴보면 좋지 않은 상황을 외면해 왔음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픈 기억, 아픈 상처, 망각하고 싶은 트라우마들이 그 감각 안에 숨어 있음이 드러나면 깊은 자기 연민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아파하는 아이를 안아 주고  어루만지듯이 그렇게 연민으로 대합니다. 연민 어린 알아차림으로 들이쉬고 내쉬면서 바라보고 안아줍니다.

-깨달음의 길, 수고명상- 최동훈 <담 앤 북스 >        

 하지만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어깨 보호 차원에서 천천히 걷기 명상(위파 난다)을 하면서 제대로 명상이 안 되는 건 내가 ‘어깨만 괜찮았다면...... 지금 완벽했을 텐데 “을 무한반복하며 속상함으로 의식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앗 이러면 안 되는데, 비워야지. 알아차림을 해도 의식은 제자리만 맴돈다. 아직 난 명상의 길로 들어서기가 멀었나 보다. 마음이 비워지지 않을 때는 강아지를 데리고 얼른 나간다.   

  

오늘은 월요일 대학교 청강수업이 없는 날, 엊저녁 내일 뭐 하냐는 신랑의 질문에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길 거라고 한 이유는, 모든 일이 어깨에 달렸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어젯밤에 내일 요가를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잠들었건만, 역시나 일어나기도 전에 어깨가 쉬라고 얘기해 줬다, 그래도 행여나 다운독이라도 되면 가야지 억지를 써보니 어깨와 다리로 지탱은 되어도 제자리로 원상복귀가 안되었다. 기대는 욕심이었다. 욕심이 화의 근원인 걸 또 몸으로 배운다.     


점심 무렵 비예보가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어깨가 더 무겁다. 강아지를 데리고 모닝 산책을 갔다. 그동안 해가 중천에 떠야지만 산책을 갔었는데,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봄이 좋다. 언제 곧 쏟아질 듯한 흐린 하늘, 바람까지 부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여서 반갑다.      


만약 어깨가 좋았더라면 이 날씨에 월요일 아침 9시 풍경을 거닐 수 있었을까? 아마 이 시간에 창밖을 보며 ’ 꽃은 다 지고 봄비가 쏟아지고 나면 더워질 거야 ‘ 걱정하며 요가 갈 준비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겠지, 밖에 나왔기에 탐스러운 겹벚꽃 나무 아래 꽃잎이 소복이 떨어진 풍경을 보고 ’ 넌 스스로를  많이 내려놓고도 빛이 나는구나 ‘ 명상의 스승을 발견했다, 흐린 날 더 탐스러운 겹벚꽃의 위력을 볼 수 있었다.     


월요일 9시 아이들은 이미 등교 했고, 출근 차량은 한산해졌고, 거리에는 공공근로 노인들만 노란 조끼를 입고 교통 지도를 마무리하고 계셨다. 공원은 한산하기 그지없어 잠시 강아지 목줄을 풀어주었다. 캐나다 친구가 보내준 강아지 산책 영상을 흉내 냈다. 드넓진 않아도 달려보라고, 하지만 우리 강아지는 어색해서인지 뛰지 않았다. 내가 달렸더니 부리나케 쫓아왔다. 내 등짝이 안보일까 봐 안절부절 부리나케 쫓아왔다. 월요일 아침이라 가능했던 시도였다. 늘 다니던 길로 가다가 공사 표지를 봤다. 여덟 글자가 위로가 될 줄이야. 너도 쉬어 가는구나. 지금은 잠시 불편하지만 나아질 거라고 저절로 자기 암시가 되었다.



지금 내 백조생활은 월요일 아침을 닮았다, 다들 제자리로 찾아간 시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고,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백지 같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같은 월요일 풍경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저자:가지꽃 <여유당>


지난 토요일 그림책 명상 시간에 읽은 책으로 아침 의식의 회로도가 바뀌었다. 

 "나 꽃을 입고 포근하게 잘 잤네”

라고 어깨 운수 대신 한때 깃털 같았던 내 어깨에게 밤새 안녕해 주어서 감사하다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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