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매니저
오늘 며칠이야? 무슨 요일이지?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매일 묻는 레퍼토리이다.
일요일이잖아, 자신 있게 대답하시지만, 오늘은 수요일이다.
반복되는 오답과 어긋나는 기억의 퍼즐로 마음이 허물어진다. 이제 통화너머의 엄마의 일상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아니 그리고 싶지가 않다가 진실일 수도.
엄마의 기억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가고, 막연히 걱정하던 일들이 점점 현실로 발현되고 있다.
가정살림에 손을 뗀 건 아니지만, 집과 냉장고, 엄마의 옷서랍장이 엄마의 머릿속처럼
복잡해져 간다. 그래도 평생 주부로 지내온 삶의 전력으로 장을 보며( 자주 빠뜨려서
수시로 가는 게 안쓰럽지만) 끼니마다 아버지를 위해 밥상을 차리시고 , 더디고 비효율적인 살림을 해내신다.
내가 친정에 가는 한 달에 한 번, 1박 2일 동안 잠시의 해방에 감격하시는 것에서
삶의 노고가 더 깊게 와닿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치 시집보낸 딸을 두고 오는 친정 엄마의 기분이랄까.
그것도 잘못된 시집을 보내고 온......
평생 남편에게 존중과 애정을 받지 못한 인생은
아프고 나서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무시와 냉대가 더해져서 환자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 엄마가
안쓰러워 마음이 아리다. 만날 때마다 체중이 줄고, 쇠약해지는 게 눈에 보여서
가급적 외식하시고 더울 때는 장 보러 가지 말라고 걱정하면
20대 때의 기억이 섬광처럼 번쩍 떠오르는지,
"엄마 여군에서 소대장 했던 사람이야! 엄마 걱정은 하지 마."
마치 타짜의 김혜수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하는 것처럼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도도해지는 순간이다.
그게 더 슬프다. 평생 누구에게 의지해본 적이 없던 엄마가 요즘 자식들의 케어를 버거워하신다.
"내가 너희들에게 걱정이나 끼치고, 엄마가 엄마역할을 못해서 미안해."
가끔 와서 살림을 해주는 딸을 보면 사위에게 미안해하고, 집안일을 도울 때마다
너 가고 엄마가 하면 된다며 도움받기를 거절하신다. 케어받는 게 어색한 엄마에게는
세뇌가 필요하다. 그리고 받는 것에 익숙하도록 자꾸 해주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엄마가 도도해지는 게 지금 내 소원이다.
비록 일생동안 남편 앞에서 도도해 본 적은 없지만 이제라도 내가 엄마의 애인이 되어
도도함을 받아주고 싶다. 자식들 앞에서라도 거만하고 도도해지도록 과외라도 시켜주고 싶다.
'치매니까 잘 부탁드립니다"책에서
부모님을 봉양한다는 것은
내가 일생동안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육아라고 했다.
혹자는 부모님이 연로하기 전, 아마도 부모님을 봉양하기 전이 인생의 가장 은혜로운 시기라고 했다.
막상 그 시기를 마주하니 이 말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다. 가정을 꾸리며 책임질 일이 많아졌다고
푸념하며 지낸 지난 20년이 내 인생의 태평성대였을 줄이야.
내 부모님은 시댁과 비교우위에서 내가 한 것에 비해 내게 더 많은 에너지를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내 부모가 늙고 약해져 시조부모님, 시어머니를 봉양할 때 보다
타격감이 수십 배인 걸 보면, 그때는 내가 물심양면으로 케어를 하지 않았다는 게 방증이 된다.
그 당시 시댁에 불평했던 나의 오만 방자함에 벌을 준 것 일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봐야만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100세 시대 이전의 말은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양육자가 되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걸 체감한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엄마 걱정으로 가득한 지금, 내일 새벽에도 깨서 멍하니 tv나
유튜브 쇼츠를 보는 건 아닌지, 그렇게 고단하게 시작하는 아침에 엉뚱한 옷을 입고,
늘 가던 곳에서 길을 헤매는 건 아닌지 늘 노심초사다.
눈에서 멀어지니 상상력이 풍부해져 걱정이 불어난다.
난생처음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밤이 늘어나 늙어간다. 늙어가야 어른이 되나 보다.
러닝을 하게 된 이유 중 8할은 굿잠을 위해서이다.
지금 엄마는 경도인지장애로 일상생활이 순조롭지가 않다. 쉽게 했던 일도 더디고,
어색함이 묻어난다. 했던 말을 자주 하시고, 옛날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신다.
그 좋아하던 옷 입기도 계절감을 비껴가 한여름에 가을 옷을 입고,
늘 다니시던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다행히 스트레스를 빨리 털어내던 예전 성향은
그대로라서 자주 실수해도 자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던 보고 싶다는 말을 하시고, 더 자주 웃으시고,
더 순수해져서 메타버스에서 온 다른 엄마 같다. 낯선 광경과 난생처음 듣는 말이
하루종일 귓가에 맴돌아 마음은 늘 엄마한테 가있다. 엄마가 가스라이팅의 달인이 될 줄이야.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자주 통화를 하고 친정에 가서 오롯이 엄마 곁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간 내리사랑을 받는데만 익숙했던 이기적인 딸이었다는 걸 돌아보게 됐다.
우리 사이가 이제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밀착 케어를 하다 보니 엄마는 부담스러우면서도 관심받는 게
점점 즐거우신 것 같다. 지난주에 갔을 때는 산책을 하며 개똥벌레 노래를 부르다가
(슬프게도 엄마의 자칭 로고송이다.)
가족도 형제도 없는 엄마에게 딸들이 나이가 들수록 친구 같다고 했다.
"엄마 그간 엄마 역할 많이 했으니 이제 엄마가 우리 보호를 받을 때야.
자식들이 챙겨주는 게 부담스러우면 우리를 찐친이라고 생각해. 친구끼리도 챙겨주는 거잖아"
감정기억으로 우리를 오래오래 따뜻하게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