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걔 금수저래"
"와! 부럽다... 나는...?"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행복한 사람이 아닌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는다. 학교 시스템은 성적으로 아이들의 등급을 나눈다. 그렇게 등급을 부여받고 교육받은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혹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현실 말이다. '금수저', '흙수저'하는 이런 신조어들은 이 시대를 잘 대변해 준다.
인류의 생존은 인간 정신의 근본적 변화에 달렸다
독일의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이러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자신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이 시대에 메시지를 보낸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경제적 파국이 올 것이라고 말하며, 인류의 육체적 생존이 인간 정신의 근본적 변화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파멸을 향해가는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마치 고통에 허덕이던 중생들을 구하려던 싯다르타처럼,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님처럼.
에리히 프롬은 삶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실존양식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소유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안정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실존양식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은 소유하려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 되는 실존양식이다.
두 가지 실존양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체험이다. 각 양식의 강도가 개인의 성격과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지금껏 소유적 실존양식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에리히 프롬은 더 나은, 더 인간다운 건강한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존재적 실존양식이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 - 소유적 실존양식
소유적 실존양식은 끝없는 소비의 굴레로 이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혹 당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져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광고한다. 매일 끝없이 쏟아지는 광고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소비에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함으로 새로운 자아를 취득하는 것으로 여긴다. 소비한 것은 곧 충족감이 없어지기에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진다. 남이 가진 것과 자신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자신을 소외 시킨다.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행복(쾌락)을 얻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고된 노동을 하며 삶의 쳇바퀴를 돌린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극단적 이기주의로 나타난다. 사유재산제는 사람까지 소유물로 여긴다. 사람들은 나와 상대를 '나와 너'가 아닌, '나와 물건'으로 취급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가스라이팅'등을 하며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한다. 심지어 돈을 위해서 상대의 목숨까지 노린다. 또한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상대를 두려워하고 매사에 의심하고 공격적, 방어적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까지 서슴지 않는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수동적 삶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은 자본을 얻기 위해서 기업의 관료주의 시스템에 들어간다. 그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 일하는 기계가 되어 집단이 이끄는 데로 자신을 내어 맡긴다. 자유로운 개성으로 사고하는데 무기력해지고, 성장하기를 멈춘 개인은 갈수록 수동적이며 소모적이고 병든 상태가 된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관계,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관계이다.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인간적이고 건강한 삶의 방식 - 존재적 실존양식
존재적 실존양식이란 소유, 자기중심주의, 집착, 욕심의 반대개념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은 인간이 지닌 고유한 능력의 표출이다. 즉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 되는 실존양식이다. 존재적 삶은 항상 자신을 성장시키려 하며, 자신의 재능을 타인에게 나누고 베풀고 희생한다. 그렇게 타인과 하나됨으로써 고립을 극복한다.
존재적 실존양식의 조건은 독립심과 자유, 비판적 이성, 능동성이다. 존재는 능동적 활동 상태다. 능동적 활동상태란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는 가진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에서 생기는 걱정과 불안이 없다. 존재하는 자아는 ‘내가 가진 소유’가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를 앗아가거나 나의 안정과 주체적 느낌을 위협할 수 없다.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된다. 이성의 힘, 사랑의 힘, 예술, 지적 창조력은 사용함으로써 불어난다. 기쁨은 이러한 생산적 활동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체험이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존재적 삶을 추구했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21살 때 큰 성공을 거두었고, 25살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한 인터뷰어가 스티브 잡스에게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한 번도 사업의 목적을 돈으로 봤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 조직원들, 함께 만들었던 제품, 그리고 그 제품들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을 '히피'라고 했다. 히피는 우리의 일상 너머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 하였다. 그는 우리의 삶 속에는 일상을 초월한 무언인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 초월적인 무엇인가가 사람들로 하여금 은행원이 아닌, 시인을 선택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히피의 혼이 물건에도 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제품이 제조되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그들은 그 혼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제품 안에 그러한 멋진 혼이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자신을 비롯해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그냥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였기 때문에 컴퓨터 관련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 매체라면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겠다."라고 하며.
그는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고 자신의 재능을 온 세상 사람들과 나누었다. 자아실현을 위해 온 삶을 쏟아붓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다 갔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성격 문제, 가족과 직원과의 갈등 등 많은 문제가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존재적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나다운 삶
그럼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그와 관련해서 아무런 행위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생계는 어떡하고? 그런 뜻이 아니다. 소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집착이 그것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소유하고 행하는 것에 묶이고 속박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유와 자아에 집착하는 만큼 자유는 제한받는다. 자유는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에 묶여 있으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없다. 사물과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랑과 생산적 존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초연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타인과 하나 되기 위해서이다.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물질을 축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내 안에 어떤 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지. 세상이 정해준 꿈을 내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남과 비교하며 더 잘나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닌지. 내 직업이 나를 잘 표현해 주는 일인지. 이 삶이 과연 나다운 삶인지. 나다움이란 과연 무엇인지.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정리와 청소를 잘 한다면, 그것이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세상과 하나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함으로써 이미 당신은 존재적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