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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비 Feb 19. 2020

200년 전 정약용 선생님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00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과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쓴 편지를 엮어 놓은 책이다. 2017년 이 책을 통해 정약용 선생님을 만났다.  


정약용은 조선 정조 때 실학자로 호는 다산이다. 1762년 경기도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한림, 교리, 암행어사 등의 벼슬을 살다가 신유교옥(천주교 탄압)에 연루되어 40세 때부터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문장과 유교 경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과학 등에도 밝아 진보적 학풍을 총괄 정리했으며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태도는 그의 학문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500여권의 방대한 실학 관계 저작을 완성했으며, 경학 관계 연구서 232권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과 시와 문으로도 뛰어난 저서를 많이 남긴 실학의 집대성자다. 1836년 향리에서 별세했다.


그는 천주교 탄압으로인해 폐족이 되어 유배지에서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내야 했지만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극한 절망에도 굴하지 않았다. 양심을 버리지도, 선함을 꺽지도 않았다. 그는 쇠약해진 몸을 일으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편지에는 절망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희망만이 쓰여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심적으로 정약용 선생님과 같이 철저히 폐족이 된 심정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하며 읽었다. 모든 편지가 나를 위해 쓰인 것 같았다. 다산은 편지를 통해 자기의 분신인 두 아들과 형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족 간의 윤리, 이웃간의 인간관계, 친구 사귀는 일, 공부하는 목적과 방법, 태도 등을 일러준다.


편지를 읽으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피식피식 웃기도 했는데, 웃은 이유는, 정약용 선생님이 너무나 잔소리꾼 같아서였다. 어찌나 했던 말을 또 하고 공부하는 방법도 꼼~꼼~하게 일러주시는지, 내가 그의 자식이었다면 마음속으로 '아 제발... 그만(♡)'이라고 말했을 것 같다. 편지엔 잔소리만큼이나 큰 사랑이 묻어있었다. 그래서 정약용 선생님에게 사랑스러운 잔소리꾼란 별명을 지어드렸다. 그의 잔소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다. 정약용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은 100개도 넘을 것이다. 그중 세 가지만 정리해보았다.





정약용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




첫째, 독서의 중요성과 방법

P36 오직 독서만이 살아나갈 길이다. 

P283 그러나 독서 한 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인 것이다.

P68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으냐?



정약용 선생님은 아들들에게 독서만이 집안을 살리는 길이라 말한다. 벼슬길은 막혔어도 독서로 성인이 되라고 한다. 독서의 중요성과 더불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읽고, 어떤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준다. 그는 책을 읽고 '초서'를 하였는데, 책에 중요한 내용만 추려 노트에 정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백 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 공을 들이면 된다고 하였다. 한동안 정약용 선생님처럼 노트에 열심히 초서(필사)를 했다. 요점만 필사한 노트는 짧은 시간에 읽었던 책을 여러 번 볼 수 있고, 내용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여러 책들과 연결되면서 좋은 생각도 많이 떠올랐다. 정약용 선생님은 원래 천재지만, 초서를 통해 더 탁월해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책 한 권을 볼 때 오직 나의 학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추려 쓰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도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 것이니 백 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 공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P120




둘째, 강한 기상과 긍정적인 마음 자세

P189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P220 남자는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짐승처럼 전투적인 기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교정하여 법도에 맞게 다듬어가야지만 유용한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은 그 한 몸만 선하게 하기에 족할 뿐입니다. <형님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이 글에서 정약용 선생님의 높은 기상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와~너무 멋있잖아!'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글만 보면 마냥 따뜻하고 착하실 것 같은데, 정약용 선생님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저런 문장을 쓸 수가 있지?라며 감탄했다. 나도 용기를 내어 강한 기상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셋째, 사랑하는 마음

P41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P42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P276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 - 공자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님은 누구보다 약자들의 편이었다. 그는 민생들의 고초를 보았다. 유배지에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등을 저술하여 이를 통해 중앙 정치 제도, 지방 관리 제도, 사법 제도 등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여 민생들의 고초를 덜어주고자 하였고 부국강병을 꿈꾸었다. 나라의 버림을 받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나라와 민생들을 생각했다. 죽는 날까지 제자 양성에도 힘썼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내 눈엔 사랑 밖에 안 보인다.맹자는 성인은 배우고 가르치는 자라고 했다. 정약용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성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편지 중에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든 시가 있다. 일명 <매조도>라고 불리는 이 시는 다산의 외동딸이 시집갈 때 선물한 것이다. 귀양살이하던 유배지에서 시집가는 딸에게 특별히 선물할 물건도 없던 때여서 다산은 이 매조도를 그리고 좋은 화제를 지어 딸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시집가야 할 딸아이에게

사뿐사뿐 새가 날아와
우리 뜨락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쉬네
매화꽃 향내 짙게 풍기자꽃향기 그리워 날아왔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 시를 읽고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지금 다시 봐도 마음이 울컥한다. 정약용 선생님은 이 시를 지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유배지에서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아내가 보내준 낡은 치맛자락에 시를 지어 선물로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편지를 받은 딸도 한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작가 스티븐 킹은 '글쓰기란 정신감응(텔레파시)이다' 라고 했다. 그들의 감정이 200년 후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나도 내 스승처럼


200년 전에 쓰여진 편지를 통해 정약용 선생님과 정신적인 만남을 가졌다. 좋은 사람과의 정신적인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는 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내 스승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되겠지? 어떤 모습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다시 교육현장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랫동안 방황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열리지 않고, 마음이 안 간다. 오랜 생각 끝에 내 길임을 알았으니,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마음에 변덕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결국엔 또 하나님이 바른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 믿는다.


올해는 학업도 같이 병행해 전문성을 더하려고 한다. 계속 나이 탓하며 여러 가지 핑계로 미뤄왔는데, 마음의 확신이 드니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 스승처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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