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소꿉놀이

인생은 단 한 번의 소꿉놀이다

by 명문식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소꿉놀이다. 어릴 적 소꿉놀이는 흙으로 만든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먹는 시늉만 해도 배가 부르고, 돈과 명예와 권세는 몰라도 좋고, 사는 일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 필요도 없고, 삶의 숙제나 상처도 없고, 다음 날에도 또 다른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 사랑이 뭔지 모르면서 아기 부부 연을 맺던 천진한 유년의 날들이다. 옛날의 소꿉놀이 장소는 언제나 남의 집 담벼락 밑 양지바른 곳이나 늙은 느티나무 그늘 밑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행복을 만들었고 요즈음의 아기들은 놀이터 공간이나 아파트 거실에서 신식 장난감으로 소꿉놀이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꿉놀이는 인생을 닮았다. 소꿉놀이는 주동하는 아이의 기분에 따라 어떤 아이는 아빠로, 어떤 아이는 엄마로, 언니로, 의사로 다양한 종류의 배역이 정해진다, 놀이가 진행되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토라지는 아이도 있다, 그러다가도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리면 어디선가 어머니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배역에 사용하던 물건을 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들어섰다.


소꿉놀이는 대리만족의 장이었다. 인생의 배역은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지만 소꿉놀이는 손쉽게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자기 배역이 좋아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배역이 좋지 않아 슬플 때도 있지만 우리네 인생은 배역이 한정적이고 유한적이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던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황혼이 깃들게 되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도 모두 다 버려두고 가야 한다, 소꿉놀이의 가치를 이제야 알았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이 세상에 있을 때만 소꿉놀이의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인생을 한 바퀴 돌아와 세상 물정을 알 것 같지만 아직도 나는 소꿉놀이가 서툴다.


나이 들어 뒤돌아보니 지난날의 세상사가 소꿉놀이였다. 배역이 있어야 진짜 소꿉놀이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색다른 소꿉놀이를 시작한다. 한 줄의 글을 써서 책을 편집하고, 지인들과 전국 명산을 찾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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