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늙었다

세월이 늙어 노을이 되었다

by 명문식

해가 늙으면 저녁노을이 된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해가 서산에 녹아내려면 노년의 삶 속으로 접어든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햇무리가 걷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다. 노을이 유난히 황홀하면 별 볼 일만 남았다는 것을 붉은 맨살이 탈 때도 몰랐다.


고향의 품을 벗어나 자기만의 집을 짓고 살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마음속을 욕심대로 가득 채웠는데, 어느 날 거실문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헛간에 쉼 없이 물건을 날랐는데 자세히 보니 헛수고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오갔던 내 세월뿐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눈앞에 맴돌고, 그리운 정만 어제 같다. 그 세월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다시 올 수 없다기에 내 서재만 들여다본다. 아등바등 살았어도 이제는 지나간 희로애락이 재산이다. 세월이 쌓일수록 세상사가 꿈처럼 희미해지고, 말도 표정도 퇴색되었다. 세월이라는 말조차 내 표정일 뿐, 만나는 가슴마다 비어 있었다. 인생길에 돈도 명예도 바람이더라. 사랑도 인연도 사시장철 불어오는 바람도 영원하지 않고, 세월도 영원할 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더라.

세월 따라 행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누구나 깨끗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는 쉽지만, 깨끗하게 살기는 어렵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하고, 지극히 작은 오류가 쌓여도 산처럼 커지기 때문이었다.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지난날에는 정답이었는데 오늘에는 오답이 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세월과 성인이 되어 보이는 세월이 달랐다. 사람들은 자기가 변하고도 세월이 변했다고 말한다. 명심보감에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경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고, 같은 일이 일어났어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남의 경험담은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 경험에서 깨달음과 배움을 얻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많은 경험을 한다. 많은 경험은 더 지혜롭게 만들어주고,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내가 겪은 일이든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으로 겪은 일이든 모든 경험은 나에게 지혜와 가치를 준다.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값진 지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은 좌절하는 과정을 겪은 후에 교훈을 주고 엄한 스승이 된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도 나의 경험 못지않게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하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해보는 사람도 있다.


경험에서 교훈을 도출하고 연습으로 지혜를 얻었다.


우리는 학문이나 기예가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히고, 기술을 습득한다. 탁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 탁구대 앞에 서 있는 선수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경기에도 수많은 공을 주고받지만 모든 상황에 대해 어떤 전략과 결과를 예측하는 안목이 있다. 그것은 오로지 경험과 연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공수 양면의 모든 동작이 수많은 연습을 통하여 지혜를 얻고, 실제 경기에서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최첨단 라켓을 개발하여 연습 효율과 기량을 높이고, 과학적인 연습과 경험 덕택에 선수들은 기대 이상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경기에서 구사하는 전략마다 상대 선수가 다르게 반응하면 결과도 달라진다. 선수들은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을 접목하여 최적의 수준으로 다듬는다. 실제로 겪어 본 것이나 얻은 지식은 소중한 재산이다. 심리학자 존 듀이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순환고리로 보았다. 인간은 먼저 경험하고 이것을 성찰한 뒤 그것에서 추상적인 교훈을 도출하고, 이 교훈을 적용해 경험을 넓히고, 다시 학습의 순환고리를 만든다고 한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잔잔했던 지난 삶보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삶이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춘의 꿈을 이고 어둠을 가르던 삶이 보람으로 여겨진다. 거친 바다에서 파도치는 모습이 멋지듯, 드세고 거친 내 삶이 이제 보니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난 삶은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바위에 부딪치고 깨져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세파에 시달리는 세상으로 나가 경이로운 빛깔을 빚어내는 것이 보람이었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살아왔다. 우리가 상처를 해소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이유는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서다. 구체적으로 언어화하지 못한 내 안의 감정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부풀어지면서 끝내 나를 찾고 있었다. 살아가며 흔들리는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은 예나 지금이나 말과 글로 표현하는 행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