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이 서러울 때가 있다
“손주 키운 공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손주를 돌보다 다치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원망을 듣기도 한다. 힘든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특히 돌봄의 대상이 손주들이면 그 공을 당사자들이 가장 먼저 잊는다. 손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도 모르는 일도 있다.
‘좋은 글’의 ‘할배와 손자’라는 경상도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 이야기다. 며느리가 아들을 연년생으로 출산하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큰 손자를 데려다가 초등학교까지 키워서 돌려보냈다. 자식 키울 때는 몰랐던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웠고, 명절에 만나면 너무 예뻐서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주머니 털어서 용돈도 챙겨주고 헤어질 때는 항상 아쉬워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손자 녀석 얼굴이 아련히 떠오를 때마다 전화라도 하면 며느리가 '아버님! 애가 학원 갔다 와서 지금 자고 있어요. 다음에 전화하겠어요.” 하면서 전화가 끊겼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손자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가 너무 기뻐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막걸리 파티도 벌이고 신이 났다. 고령에 시력과 청력이 정상이 아닌데 경상도 끝자락에서 서울까지 혼자 갈 일이 부담된 할아버지는 서울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했다.
“야! 요새 동생이 보고 싶다.”
동생이 형님의 목소리가 아련하여 차를 몰고 내려가서 사흘 동안 형님 내외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상경하려는데 형님 할아버지가 “야 나도 서울 가고 싶다. 손자 놈도 보고 싶고.” 하시면서 울먹거렸다. 그래서 함께 상경하여 다음 날 형님 할아버지 아들의 집에 갔다. 손자 녀석은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서 소파에 앉은 할아버지를 보는 둥 마는 둥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며느리가 민망하여
“야!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오셨는데 인사드려야지.”
손자는 다시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고개만 끄떡하고 다시 들어갔다. 작은할아버지가 옆에서 보니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형님이 불쌍해 보여서
“야!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셨는데 할아버지 옆에 와서 껴안고 뽀뽀도 한번 해야지.”
큰소리치니 마지못해 나와서 할아버지 옆에 멋쩍게 앉아 TV만 보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로 저녁을 먹고 작은할아버지가 나오는데 형님이 “나도 같이 갈란다.” 하시면서 따라 나오신다. 며느리는 머뭇거리고,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오랜만에 먼 길 오셨는데 주무시고 쉬었다 가세요.” 그러자 형님이 “댔다 마~ 들어가거라. 나는 네 삼촌 집에 가서 자고 내일 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시는 형님의 눈시울이 붉게 변했다.
“동생아!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다.” 하시면서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배려는 상대방의 처지와 상황을 먼저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손자, 며느리, 아들은 할아버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상대방의 입장은 상관없이 자신의 처지만 우선시했다. 가족 간에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람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은 변함없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이 담긴 '할미꽃'에 대한 슬픈 전설도 있다. 할미꽃은 4월경에 꽃줄기 끝에서 붉은빛을 띤 자주색의 종 모양의 꽃이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난다.
어느 산골에 세 딸을 키우던 할머니가 세 딸을 결혼시키고 혼자 남았다. 첫째는 부자에게, 둘째는 똑똑한 선비에게, 셋째는 마음씨 고운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딸들이 보고 싶어 죽기 전에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추운 겨울날에 지팡이에 의지해 꼬부랑 고개를 넘어 세 딸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첫째 딸 집에 도착했지만 첫째 딸은 늙고 초라한 어머니가 못마땅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둘째 딸 집을 찾아갔는데 서방님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누룽지 한 주먹만 주면서 내보냈다. 한바탕 눈보라가 휘몰아친 다음 날 눈을 치우던 셋째 딸은 자기 집 앞의 눈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하였다. 마냥 슬퍼하던 셋째 딸은 햇볕이 잘 드는 산언덕에 어머니를 묻어드렸다. 이듬해부터 어머니의 무덤가에는 자줏빛 꽃이 피었는데, 할머니의 허리 같이 굽은 꽃이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넋이 꽃이 되었다고 하여 ‘할미꽃’이라 불렀고, 노인의 흰머리 꽃이라 하여 백두옹이라고도 불렀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기르며 뒷바라지하는 일에 여념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당연히 노인이 되어 부모에게 남는 것이라곤 늙은 몸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성장한 자식들은 늙은 부모 모시기를 꺼리고 회피하려 한다. ‘할미꽃 전설’은 이러한 자식들의 심리와 그 일을 당한 부모의 서글픈 마음을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