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23일, 미국 유타주에 사는 한 부부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부부는 '매튜'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축복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튜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와 전신 마비 장애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출산 직후 의사들은 매튜가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부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매튜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99년 2월 21일 잠든 채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소중하지만 고통스러웠던 11년이었다.
아빠는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 예고됐던 아들이 영원히 잠드는 곳을 마련하면서 마지막 선물을 계획했다. 지역 공동묘지에 아들의 무덤을 준비한 아빠는 아들의 묘비에 작은 동상을 세웠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건강한 두 발로 서서 하늘로 올라가는 소년 동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장애라는 틀에 갇혀 힘들었던 아들의 영혼이 마침내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를 담은 동상이었다. 이후 공동묘지를 찾은 사람들마다 매튜의 동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 사연이 널리 알려졌고, 부부는 아들을 위해 자선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들은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보조 장비를 지원해주는 선행을 펼쳤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남겨진 이들에게는 너무도 큰 슬픔이다.
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 환자들을 보살폈던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의 임종 직전 ‘깨달음’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들이 말하는 다섯 가지 후회가 있었다. ‘평생 내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 ‘직장 생활에만 매진했던 것’,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것’, ‘오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 ‘조금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내용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고대 도가에서는 만물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고 했다. 변증법적으로 생과 사를 연결하면 태어나면 죽고, 세상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끝나면 그것이 죽음이다. 출생하여 죽음에 이르는 길목에 늙음이 있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자신은 늙고, 볼품없는 모습이 되는 것이 늙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날 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수 없는 빈손이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삶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보지 못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오늘의 삶은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인간은 삶의 끝이 와도 지난 삶에 애절하게 매달린다. 누구나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현재의 삶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삶이 지금보다 순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원죄에 대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의미는 모든 생물이 겪는 생명 과정의 완전 정지 상태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하여 의식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대중적인 내세관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영적인 세상에서 삶을 이어 간다는 내세관이다. 두 번째는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러한 재탄생이 계속된다는 내세관이다. 세 번째는 죽음과 동시에 개인은 영원히 소멸한다는 내세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은 첫 번째 내세관을, 불교, 힌두교 등은 두 번째 내세관을, 유물론에서는 세 번째 내세관을 말한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이다. 어떤 이는 조금 살다가, 어떤 이는 오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 인간의 생명은 봄이 있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는가 하면 겨울이 온다. 소중한 시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도 못한다. 죽음에 대한 걱정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삶에 근심은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마지막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그 순간이 지나도 별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벽은 어제처럼 밝아 오고 기쁨과 슬픔도 파도처럼 출렁인다. 오늘 이 아침도, 첫눈도,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없다. 모든 사물은 영원한 것이 없고, 낡고 때 묻고, 사위어 간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하고 떠나간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길이고, 죽음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조병화 님의 ‘먼 여행’이란 시다.
이제부턴 나를 찾거든
없다고만 해라
‘어딜 갔느냐’고 묻거든
‘그저 멀리 갔다’고만 해라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거든
‘그저 모른다’고만 해라
‘그저 멀리 갔다’고만 해라.
이 시를 읽으면 잊었던 일들이 그리움이 된다. 세월에 물들어 가고, 숨겨졌던 마음이 잔잔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가는 그 길에 봄비가 내리니 오히려 시원하다. 먼저 가신 분들이 하늘에서 부드럽게 보내는 손길 같다. 누구나 가는 그 길에 오늘은 봄비가 마음을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