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나의 억새로 살아간다
천변에 아침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열심히 뛰고 걸으며 운동장을 방불케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이 더 열심히 걷고, 벤치에도 한 사람씩 모이고 저녁까지 계속된다.
그 천변도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앞 강물 밀려가면서 뒤 강물 흘러 이어진다. 강물 따라 천변을 천천히 걷노라니 억새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들에게도 세대교체가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홍수에 시달리면서도 잘 자라 왕성한 모습을 만들더니 가을 어느 날, 하얀 머리를 내보이며 초라하게 쪼그라들고 있었는데, 봄날이 되니 초록의 신세대가 밑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며 희망의 눈길을 끌었다. 순서에 따라 신세대는 무럭무럭 자라 흰머리 구세대 억새를 따라잡고 군림하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억새의 세대교체는 밀어내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억새의 구세대와 신세대가 교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세대 억새들이 사는 곳과 새로운 세대가 사는 곳은 같은 장소다. 우리의 일생이 이루어지는 ‘장’은 바뀌는 모습이 도식화되고, 분명하지만, 그들은 작년의 생존 방법과 대면 관계가 변함이 없고, 그것이 일생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생로병사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1년 단위로 생로병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일생이 아니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새로 나온 억새들은 초록빛을 발하며 힘차게 위로 솟아오르지만 저물어가는 구세대 억새는 흰머리만 보인다. 어쩌면 세대교체 모습은 자연스러움이다.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온다. 가을에 낙엽이 지면 저걸 어쩌나 아쉬워하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낙엽을 거름 삼아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새순이 돋는다. 억새의 세대교체야말로 그 존재를 계속하게 하는 섭리다. 억새를 갈대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우면 억새, 키가 큰 편이고 꽃의 색깔이 갈색에 가까우면 갈대로 구분한다. 가운데 잎맥에 하얀 선이 두드러지면 억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억새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 있기가 힘들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는 억새는 견딜 만했다.
“와, 시원하고 경치가 좋다.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 참 좋아, 난 여기서 살래.”
억새의 말에 갈대와 달뿌리풀은
“난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더 낮은 곳으로 갈래.”
그들은 억새와 헤어져서 산 아래로 내려가다가 개울을 만났다.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이 말했다.
“난 여기가 좋다. 여기서 달그림자를 보면서 살 거야.”
달뿌리풀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 살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으로 걸어갔는데 앞이 그만 바다로 막혀버렸다. 갈대는 더 갈 수가 없어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억새로 살아간다.
억새는 무리 지어 갈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햇볕을 받으며 눈부시게 반짝이기도 하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 어우러지고 부딪치며, 잠깐 살다가 다음 세대의 거름이 된다. 너무나 가냘프고, 흔들흔들 간당거리는 모습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그것이 억새의 삶이고 운명이다. 그 모습에서 끈질긴 인간의 의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