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을 느낄 때

강물은 다 어디로 가고 수평선만 보인다

by 명문식

인생은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같다. 맑은 물이 깊은 산속 중턱의 옹달샘에서 솟아나 삶을 시작했고, 그 물은 천진난만했다. 옹달샘의 많은 물은 함께 살기에 집이 좁아 넘치고, 산골짜기 물이 되어 쫄쫄거리고, 역경을 이기며 흘러갔다. 장애물을 만나면 먼 길을 돌아가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지나 낭떠러지를 만나면 함께 아우성치며 손을 꼭 잡고 뛰어내렸다. 자기만의 사연을 안고 그렇게 성장하고 경쟁하며 큰 무리가 되었다. 그 물은 동료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갈 수 있었다. 강물이 되어 흐르는 강은 많았지만, 자신의 물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강물이 마음껏 흘러 바다에 이르는 순간, 존재감이 사라졌다. 지난날의 모습을 잃고 추억만 남기며 짠맛 나는 바닷물이 되었다. 함께 흐르던 동료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저 멀리 수평선만 보였다.

젊은이가 걷는 길은 노인이 걸어온 길이고, 노인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미래 모습이다. 삶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낯설고 새로운 길을 가도 사람의 종착역은 같았다.

세상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간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자신은 늙고, 볼품없는 모습이 되는 것이 늙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날 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수 없는 빈손이다. 죽음은 겸손을 가르쳐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대중적인 내세관으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영적인 세상에서 삶이 이어진다는 내세관이고, 두 번째는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러한 재탄생이 계속된다는 내세관이고, 세 번째는 죽음과 동시에 개인은 영원히 소멸한다는 내세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은 첫 번째 내세관을, 불교, 힌두교 등은 두 번째 내세관을, 유물론에서는 세 번째 내세관을 말한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하나다. 어떤 이는 조금 살다가, 어떤 이는 오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 인생은 봄이 있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는가 하면 겨울이 온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 순간이 찾아와도 별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벽은 밝아 오고 슬픔도 함께 온다. 모든 사물은 영원한 것이 없고, 쉼 없이 변하고 떠나간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거나, 현실에 불만족을 느끼거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에 삶이 허전하다. 이러한 허전함은 상실감을 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을 찾고, 새로운 관심사나 취미를 찾으면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책임감을 느끼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성장하면 허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 자신의 삶에 의미가 생기고, 자신의 가치를 느끼면, 흡족한 세상이 보인다. 사람은 사는 방법이 서로 달라도 사람의 길을 걷는다. 사람이 걷는 길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생긴다. 그러나 인생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바다에 이른 강물처럼 수평선만 보이고, 상실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