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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Aug 07. 2020

따라오는 행복

내가 웃으면 세상이 따라 웃는다

대부분 사람은 삶의 중심에 성공이 있고,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성공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한다. 세상에는 가난하고 성공하지 못했어도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릴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지만, 건강할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복할 때는 느끼지 못하고, 행복을 잃었을 때 소중함을 깨닫는다. 어떤 이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참된 자기를 구현하고 난 후에 행복을 느낀다. 또 어떤 이는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 행복을 느낀다. 현대인들이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직업의 만족도, 주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돈을 모을 때, 유익한 음식을 선택할 때, 충분한 수면, 공동체 삶 등에 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인관계에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적고, 대인관계 유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도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자바에 있는 발리섬 사람들이 제일 행복하게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찾았다. 문화 시설도 재미있는 오락 시설도 없는 오지 섬이었다. 필 목사는 발리섬 사람들이 왜 행복한지 알아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인터뷰한 뒤에 해답을 얻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생활이 단순하고, 서로 좋아하며, 먹을 것이 넉넉하고, 아름다운 섬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고 몸이 건강하고 의식주에 걱정이 없고, 자식들이 행복하고, 좋은 친구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인간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행복하게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불행하게 보여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재물과 명예가 행복의 조건일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자기도취의 수단일 뿐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행복은 소득의 증가와 비례하지도 않고, 사회적 지위에 비례하지도 않는다. 


인생의 모든 행복과 즐거움은 저마다 대가가 따른다. 대가를 치른 행복만이 오래갈 수 있다.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만큼 행복하다면, 소득이 높은 부자 나라 사람은 더 행복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더 행복하고, 신입사원 시절보다 대리나 과장이 되면 더 행복하고, 연예인이 인기가 많고, 성공하면 더 행복해야 한다. 국민 소득이 180개국 중 122위 부탄이 국민 행복지수는 아시아 1위이다. 가난한 생활에서는 소득의 증가가 행복으로 이어지지만, 부유해지면 욕구가 커지고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든 행복과 즐거움은 저마다 대가가 따른다.


사람은 고통에서 얻는 기쁨과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우리는 남에게 베풀었을 때 나의 쓸모를 확인하며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려면 신중해지고, 작고 사소한 일이 사람을 감동하게 하며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서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불행한 것이다.     

연세가 아주 높으신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하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한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이렇게 모였으니 교가나 부릅시다. 

“지금까지 누가 교가를 알고 있어. 다 잊어버렸지.” 

그러자 교가를 부르자고 제안한 할머니가 자기는 다 알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힘차게 교가를 불렀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너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더니 기억력도 참 놀랍다.”

칭찬을 받은 할머니가 집에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할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오늘 동창회 모임에서 혼자 교가를 불렀어요.”

이 말에 할아버지도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까지 교가를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불렀는지 다시 불러봐요.”

할머니는 똑같은 노래를 신나게 다시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참, 이상하네.” 

“우리 학교 교가와 비슷해.”

장애우들이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정상인들보다 높다.  


장애우들이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정상인들보다 높은 이유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다는 감사함이 욕망을 낮추게 하고 자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자주 웃고 남에게 친절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진솔하게 대화하고,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된다. 어쨌든 기분이 좋으면 삶이 즐거워진다. 무슨 일이라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고, 그냥 웃으면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따라 웃는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듣던 ‘헬조선’이란 말을 조금 사용하고 ‘헤븐 조선’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사용한다. ‘헬조선’은 경제 선진화와 민주화에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한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한국 사람들의 헌신성, 사재기하지 않는 공동체 의식, 오랫동안 구축한 의료시스템의 효율성, 바이오 회사의 실력 등에 세계 사람들이 놀랐고, ‘헬조선’이라는 어둠을 벗겨내고 있다. '한국이 만든 반도체는 최고다'라는 인식에서 한국이 하면 무엇이든 잘한다는 점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켜 줬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한국과 일본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을 비교하였다. 블룸버그는 양국 지도자가 모든 가구에 현금 지원금을 지급하는 인기영합주의를 채택하고, 같은 날에 각각 추가경정예산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지원금을 지급하는 속도와 효율성에서 대조적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5월 19일 현재 전체 가구의 80%가 지원금을 받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같은 날 지자체의 72%가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은행 계좌로 송금한 곳이 19%에 불과했다. 한국은 전용 웹사이트를 운영하여, 온라인, 신용카드 앱을 이용하거나 은행, 주민센터에서 직접 신청하는 방법과 빠른 검색 링크들도 제공했다. 전국적인 신원 확인 시스템과 중앙 집중화된 행정 능력은 신속한 지원금 지급의 주요 요인이 됐다.     


일본은 거주지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하는데도 많은 서류 작업이 필요하지만, 한국은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있으면 모든 개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 데이터 통신망과 무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휴대전화도 뛰어난 역할을 하였다. 지원금 카드를 사용하면 즉시 남은 액수도 알려주는 메시지도 떴다. 반면에 일본은 1억 2,700만 명의 인구 중 16%만이 온라인 신청에 필요한 신분증 번호 일치 카드와 개인 식별 번호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카드 발급에만 한 달이 걸렸다. 그래서 대부분 재래식 우편으로 신청 양식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관공서 밖에서 줄을 서서 신청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난지원금이 큰 화젯거리가 됐다. 동네 편의점에서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라는 종이를 붙여 놓은 곳도 있고, 재난지원금을 쓰면 10% 할인을 해주겠다고 나선 곳도 있었다. 재난지원금이 취약 계층을 보호할 수 있으면, 정부 재정을 쓰는 것도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현금 복지의 달콤함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고,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까지도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에 우리도 받아보자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국채를 계속 찍어, 현금 복지의 비용이 늘면, 그 부담을 자식과 손주 세대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처지가 된다. 현금 복지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인류의 문명 전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     


이번 계기로 과도한 소비와 자기중심의 생활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갈등이나 시련을 극복하는 경험 자체가 소중한 일이며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현재 코로나로 인류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의 눈을 세계로 돌리고, 우리의 갈등, 시련 극복 경험을 세계에 전하는 것이 ‘헤븐 조선’이 되는 길이다. 우리 국민의 의지와 도전 정신이 ‘헤븐 조선’을 만들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길이다.     


KAIST 경영대 어떤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젊은이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합니다’라는 글의 앞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당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들, 스타벅스 커피, 스타크래프트 게임, 해외 배낭여행, 그 어떤 것들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없다. 당신들은 지금 이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으로 지금 누리는 것에 보답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누리지 못했기에 당신들이 누리는 것을 보는 것으로 행복할 따름이고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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