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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Aug 04. 2020

겸손에서 행복을 찾는다

교만은 망하는 길이고, 겸손은 흥하는 길이다

호언장담의 뜻은 ‘분수에 맞지 않고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는 말’이다. ‘자기 PR 시대’라지만 자기 과시에도 정도가 있다. 그 과시가 지나치면 자기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그것이 바로 과시의 결과다. 교만은 망하는 길이고, 겸손은 흥하는 길이다.


쥐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도서관에 살았고, 다른 한 마리는 곡식 창고에 살았다. 어느 날 두 마리가 우연히 만났다. 도서관에 사는 쥐가 잘난 척하며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곡식 창고에서 배불리 먹기만 하여 뚱보가 되었구나! 내가 사는 도서관은 아주 멋지단다. 조용하고 아늑하지.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란다.”

그러자 곡식 창고에 사는 쥐가 말했다.

“야! 너는 책을 많이 읽어서 정말 유식하겠구나.”

“그럼, 너와는 다르지,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

“좋아, 너한테 부탁할 일이 생겼네.”

곡식 창고에 사는 쥐는 선반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했다.

“여기 적힌 글씨가 참기름이야 쥐약이야?”

그 쥐가 가리킨 것은 갈색 병이었다.

도서관에 사는 쥐는 똑똑한 척했지만 사실 그 쥐도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이제 와 거짓말을 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도서관에 사는 쥐는 병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러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여 자신 있게 말했다.

“너는 이런 것도 못 읽지? 이것은 참기름이야.”

“정말, 확실하지.”

“못 믿겠으면 내가 먼저 마셔 볼게.”

도서관 쥐는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단숨에 병에 들어 있는 액체를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곡식 창고에 사는 쥐는 그제야 갈색 병에 적힌 글씨가 ‘쥐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무식한 것보다 못하다. 자기 과시형인 사람은 활발하고, 지기 싫어하고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낯가림도 하지 않고, 남 앞에 나설수록 힘이 솟는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 잘난 척하고 자신을 보다 크고 강하게 보이려 하며 야심이 많고, 자기의 약점이나 결점을 감추려 한다. 잘난 척하는 것은 ‘방어기제’의 한 수단으로 내면의 결핍을 커버하기 위한 행동이다. 


우리 사회는 식민지, 좌·우 대결, 전쟁, 쿠데타 등 급변의 시대를 겪으면서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그들은 생존이라는 절박한 명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정당성 유무와 상관없이 강자에겐 무조건 숙이고 약자에겐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에게 독립이 갑작스레 찾아와 자유로운 세상이 되고, 신분 체계가 그냥 붕괴해 버렸다. 옛 신분제는 의식 속에 남아 있는데, 신자유주의 체제와 맞물려 지금까지 식민지 문화와 갑질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고 선택할 것이라고 믿고, 남들도 내 행동을 쉽게 받아들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장님이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떠났다. 낚싯배의 선장을 만나 사장님이 물었다.

“당신은 주식을 해 보았어요.”

“아니요.”

“그러면 요즈음 경제 동향에 대하여 아는 것 있어요.”

“모르는데요.”

“그러면 부동산이나 투자처에 대하여 알고 있어요.”

“모릅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한심하다는 듯이

“당신은 아는 것이 없네요.”


그렇게 낚시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흐려지더니 파도가 치고, 배가 뒤집히기 직전일 때, 멀미하는 사장님에게 선장이 물었다.

“사장님! 수영할 줄 아세요.”

“다른 것은 다 할 줄 알아도 수영은 할 줄 몰라요.”

그때 배가 뒤집히고 사장님은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선장은 사장님을 끌고 수영을 하며 해변으로 나왔다. 무사히 해변으로 나온 선장이 웃으며 사장님께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없었으면 사장님은 죽을 뻔했네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면 할수록 눈총을 받고 미움을 산다. 요즈음 언론에 갑질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정치인 갑질, 고위직 갑질, 사장님 갑질 등 끝이 없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속한 조직의 간판과 직위가 막강하고, 자기가 능력이 있고,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기 때문이다. 모 항공사 가족의 폭언과 영상 파일을 보면 이 사람들은 노동자를 채용한 게 아니라 노예를 채용한 것 같다. 그들이 직원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신분제 사회의 노예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한 폭언, 폭행, 부당한 요구, 지시 등이 '갑질'이다.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 갑질 횡포가 만연해 있다.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 행위를 시키는 불법행위로 위화감이 조성된다.


갑질은 계약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깎아내려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 지위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제멋대로 구는 행동이다. 갑질은 육체적, 정신적 폭력, 언어폭력, 괴롭히는 환경 조장 등이 있다. 이는 겉과 속이 다른 한국 사회의 이중적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에 서열주의와 학력주의도 있다. 그것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열등감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다시 서열과 학력을 내세우며 차별을 시도하고, 사람을 판단한다. 인종이나 성 및 부의 차이로 형성된 계급에 대한 차별 못지않게 서열주의와 학력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당연한 차별의 폐해가 일어난다.


미국 남북 전쟁이 한창일 무렵, 링컨은 종종 부상 병사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했다. 한 번은 부상으로 죽음 직전에 있는 병사를 만났다. 링컨은 병사의 침상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겠어요?”

병사는 링컨을 알아보지 못하고, 간신히 이렇게 속삭였다.

“저의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만 써 주시겠어요?”


펜과 종이가 준비되고, 대통령은 정성스럽게 젊은이가 말하는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보고 싶은 어머니, 저는 저의 의무를 다하던 중에 부상했습니다. 아무래도 회복되지 못할 것 같군요. 제가 먼저 떠나더라도 저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존과 메리에게도 저 대신 입 맞춰 주시고요. 신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축복해 주시기를 빌겠어요.”    

병사는 기력이 없어 더 얘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링컨은 젊은이 대신 서명을 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아들을 위해 링컨이 이 편지를 대필했습니다.”

젊은 병사는 그 편지를 자기에게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마침내 편지를 대신 써 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고는 깜짝 놀라 병사가 물었다.

“당신이 정말로 대통령이신가요?”

링컨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대통령이오.”

그런 다음 링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는가를 그에게 묻자 병사가 말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척한 링컨 대통령은 청년의 손을 잡고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따뜻한 용기의 말들을 나지막이 들려주었다.


교만한 사람은 올바른 기준을 알지 못하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의 기쁨을 알 수 없으며, 손해 보는 행복을 알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주이고,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알고,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며,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이 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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