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몇 년간 참깨 농사를 지었다. 참깨 씨를 파종하려고 밭두둑을 만들고, 검정 비닐로 덮는다. 그리고 검정 비닐에 구멍을 낸다. 구멍이 깊지 않게 흙으로 채우고 씨를 뿌린다. 씨앗 뿌리는 방법은 작은 음료수 빈 병뚜껑에 구멍을 낸다. 구멍의 크기는 씨앗의 3배로 한다. 병 속에 참깨 씨를 넣고 거꾸로 들면서 뿌리면 1회에 두세 알씩 떨어진다. 그리고 흙을 씨 뿌리듯 덮어준다. 참깨가 발아하는 조건은 낮 기온이 25°c 이상으로 3일 정도 계속되어야 하고, 땅의 습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씨앗이 실눈을 뜨기 시작하더니 작은 머리를 내밀고 솟아난다. 가만가만 심어 놓은 자리마다 자연의 섭리가 움직인다. 이곳에는 다른 욕심도 없고, 내일을 여는 소리만 들린다.
직파한 참깨가 2∼3개씩 땅을 뚫고 존재를 알린다. 싹이 나온 지 1주일 정도 되어 본 잎이 2∼3매 되었다. 한 곳에 2개씩만 남기고 솎아주었다. 참깨들이 가뭄에도 쑥쑥 자라는 모습이 대견하다. 드문드문 솟아난 참깨가 무럭무럭 위로만 솟는다. 참깨 병충해로는 생육 초기에 발병하는 입고병과 고온다습할 때 발생하는 돌림병, 시듦병 및 생육 후기에 발생하는 잎마름병이 있다. 장마와 태풍을 견디고 땡볕을 이기며 성장통의 마디를 늘려 간다. 지주를 세우고 비닐 끈을 2중으로 묶어 도복을 예방한다.
밑에서 먼저 자란 참깨 알이 두세 알 여물어 터진다. 뽀얀 깨알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너무 신기해서 참깨 꼬투리 입을 벌려본다. 그 작은 공간에 깨알이 줄지어 서서 그들의 존재를 말한다. 참깨 깍지 속에 박혀 있는 통통한 참깨 형제들의 사연이 세상을 닮아 잘도 여물었다.
깨알이 어쩌면 이렇게 정교할 수 있을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 있는 하얀 깨가 정말 예쁘다. 탱탱하게 살찐 참깨가 우수수 쏟아진다. 장마철을 지나 푸른 하늘이 보이더니 따가운 볕에 익어 우수수 풍요로움을 쏟아 놓는다. 떨어지는 알곡을 마주 보는 눈이 행복하다. 작은 씨가 쏟아지는 소리는 자연의 함성이다. 참깨는 한 번에 다 털리지 않는다. 한 번 털고는 다시 처음처럼 단을 세워 덜 말랐던 부분이 다 건조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턴다.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반복하면 또 수확의 기쁨을 만난다. 이제는 안 나올 것 같아도 깨알이 자꾸자꾸 나온다. 이런 반복의 재미가 덤이다.
털어낸 참깨는 또 여러 번의 손을 거쳐야 한다. 잎이나 깍지 같은 것은 손으로 걷어내고 바람으로 찌꺼기를 날려 보낸다. 그러면 아주 깨끗한 깨알만 남는다. 정성으로 참깨 농사를 짓는다. 이 깨알들이 1kg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숫자가 모이는지를 생각하면 참 귀한 곡식이 참깨이다.
‘깨가 쏟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깨가 다른 곡물과는 달리 추수할 때 살짝 털기만 해도 잘 떨어진다는 뜻이다. 깨를 털어본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다. 또한 ‘깨가 쏟아진다’라는 말이 흔히 신혼살림을 하는 젊은 부부들을 말할 때도 사용한다. 매우 오붓하여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나 신나는 일을 일컬으며 남녀 관계가 아주 좋을 때 ‘깨가 쏟아진다’라고도 한다.
주부들의 눈에 남의 집 부엌에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이 국산 참깨로 짠 참기름이라고 한다. 올해 수확한 참깨를 일부는 볶아 먹고, 일부는 기름을 짜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나눔의 재미는 깨가 쏟아지는 재미와 비슷하다.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니까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깨가 쏟아진다’를 영어로 ‘They are in martial bliss’ 또는 ‘They live happily together’라고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