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Jan 16. 2018

<매혹당한 사람들>: 공간과 인물의 진폭을 그리다

원제: The Beguiled / 장르: 스릴러, 드라마 / 감독: 소피아 코폴라 / 출연: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상영시간: 94분  / 등급: 15세 관람가 / 수입 및 배급: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 개봉: 2017. 9. 6.


짙게 우거진 숲속, 한 여자아이가 전쟁 노래를 흥얼거리며 등장한다. 버섯을 따던 소녀는 다친 적군을 만나고, 그를 치료하기 위해 판스워스 신학교의 저택으로 그를 데려간다. 여자들의 공간이었던 저택은 낯선 이성의 등장에 이내 소란스러워진다. 무작정 적대시하던 여자들은 점차 그에게 매혹당하고, 얽히고설키던 관계는 한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가 단순히 한 남자와 세 여자의 얽힌 관계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건은 남북전쟁이 시작한 지 3년이 된 1864년 버지니아주에서 일어난다. 아무도 함부로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저택이라는 공간적 상황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여자만 일곱 명이서 생활하고 있는 저택은 현실과 분리된 공간이다. 펑 터지는 대포 소리가 들려오는 바깥과 달리 아이들은 저택 안에서 한가로이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악기를 연습하고 자수를 놓는다. 전쟁터와 저택을 분리하는 숲은 멀리서 들리는 대포 소리가 무색하게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한적하다. 집안의 장식과 여자들의 몸치장은 바깥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아름답다. 그와 동시에 저택은 상당히 숨 막힌 공간이다.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규율과 제약으로 묶여 있다. 바닥이 나무로 지어진 저택은 누군가가 오갈 때마다 발소리가 들리고 문과 계단은 삐걱댄다. 아이들을 수호하는 교장 마사(니콜 키드먼) 또한 엄격하게 아이들을 다스린다. 아이들은 교장 마사와 교사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에게 거의 복종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도 무서운 공간에 존 맥버니 상병(콜린 파렐)이 등장한다. 비록 적군이지만, 존의 젠틀하고 멋있는 모습에 집안의 여자들은 금방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에게 매혹당하기 시작한다. 존은 에드위나에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마사에게도 여지를 남기고, 당돌한 사춘기 소녀 알리시아(엘르 패닝)도 밀어내지 않는다. 여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매혹당한다.


엘르 패닝이 분한 알리시아는 굉장히 도발적이고 눈치도 빠른 아이다. 그녀는 애초에 자신을 둘러싼 규율과 제약에 큰 관심이 없다.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는 대놓고 딴청을 피우고 저택의 생활을 지겨워하며, 존 상병과 묘한 기류가 흐르는 에드위나를 질투해 은근히 조롱하기도 한다. 처음에 그녀는 존을 벌레보듯이 쏘아보며 적대시하지만, 그 나이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증발하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 존의 방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마사와 에드위나에게 들키면서 실패한다. 모두가 기도하는 시간에 빠져나와 몰래 존의 방으로 들어간 알리시아는 잠자는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마는 다분히 도발적이고 호기심 많은 소녀이다.

커스틴 던스트가 분한 에드위나는 청초한 인상답게 사랑의 낭만을 추구하는 여자이다. 프랑스어와 자수 등 정적이고 따분한 것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에드위나는 계속된 전쟁과 저택의 구속적인 삶에 지쳐있는데, 그녀의 삶에 새롭게 등장한 존으로 활기가 생긴다. 예쁜 드레스와 악세사리로 한껏 치장하는데, 그녀에게 반한 존은 계속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유혹한다. 그녀는 이 시대와 공간의 구속에 지친 나머지 그와 서부로 떠날 것을 약속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무용한 프랑스어를 가르치거나 정원에서 소일거리를 하는 등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에드위나는 일상이 된 전쟁과 대비되는, 한가롭고 평온한 삶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녀에게 존은 답답한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고,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를 붙잡는 사람이기도 하다.

니콜 키드먼이 분한 교장 마사는 저택 안의 아이들을 수호하는 책임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저택의 여자들을 대표해 존 상병에 상대한다. 그녀는 기독교적인 가치를 이유로 존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돌본다. 의식을 잃은 그의 몸 구석구석을 물수건으로 닦아줄 때 그녀 또한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며 그가 불청객임을 냉정하게 인지시킨다. 그녀는 존의 등장을 저택의 최고 권력자이자 여자들의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듯하다. 그녀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사람처럼 존에게 반응한다. 존이 거의 완치하자 그는 정원사를 자처하며 남으려 하지만, 마사는 낯선 남성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듯 그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려 한다. 하지만 그녀 또한 존에게 위태롭게 매혹당할 뻔한다. 그와 키스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가 깨지는데, 마사는 그런 뉘앙스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당황해한다. 그녀는 섹슈얼하면서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남성의 존재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여성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맥버니 상병이 아닌 세 명을 포함한 저택 속 여자들이다. 평화로웠던 저택에 한 남자가 등장하자 겉보기에 평온했던 세 여자의 관계는 마치 주전자 속 물 분자가 이리저리 부딪히듯 서로 도망가고 부딪힌다. 남자의 속마음을 비추지 않고 그를 둘러싼 세 여자의 행동에 중심을 두는 덕에 관객은 여자들의 속마음을 읽어낸다. 세 여자를 동시에 유혹하고 엄격한 저택을 어지럽힌 그의 대가는 처절하다. 비록 고의는 아닐지라도, 여자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위험을 처단하고 존을 저택 밖으로 내보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