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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Mar 31. 2019

1인분의 인간

서른 즈음엔 1인분의 몫을 하는 인간이 되어 있을까?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잠실에 있는 올림픽 공원이다. 사방이 꽉 막힌 서울에서 탁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곳이 흔치 않기 때문에, 그리고 초록색과 푸른색으로 물든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적당한 날씨가 되면 어김없이 올림픽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는 평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홀로나무가 있다.


나에게는 서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다. 동산에 우뚝 서 싱그럽게 잎을 피운 나홀로나무처럼, 아주 단단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있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여러 번 반복하며 겪어서 어떤 상황이 와도 침착하게 맞이하고,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상상.


그런 사람은 아마 자기 식사 한 끼쯤은 익숙하게 차려내고, 퇴근 후엔 부지런 떨며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일상에 능숙한 사람일 것이고,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아플 걱정 없이 살고, 가끔씩 만나 이야기하고 감정을 공유할 사람들도 있는 건강한 사람일 것이고,

일터에선 동료로부터 인정받으며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논리적으로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일 것이며,

당장 돈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의 월급을 받고, 적당히 저축하면서 적당히 소비하는 삶에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말하자면 온전히 1인분의 몫을 해내는 서른이 되고 싶다. 나의 ‘1인분의 인간’에 대한 기준은 꽤 ‘적당해' 보이지만, 그 ‘적당한' 삶을 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요즘 느낀다.
스물여섯인 지금은 과하게 일을 하거나, 과하게 놀거나,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바쁘다. 적당이란 게 없는 삶이랄까. 그리고 모든 일이 다 처음인 탓에 서투르다. 일하는 것도, 내 식사를 챙기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돈을 모으는 것도 자꾸만 실패를 마주한다. 도대체 어떻게 잘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시간이라고 믿는다. 아직 키가 내 허리까지 오고, 잎이 가지마다 두 세 개씩 자라고 있는 어린나무가 나무 몸통의 두께가 적당해질 때까지 햇빛을 듬뿍 받고, 빗물을 빨아들이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계절을 맞이한 탓에 이 날씨가 무척 당황스럽지만, 그 속에서 싹을 하나씩 틔우며 성장하려고 애쓰는 어린나무라고. 정말 천천히 잎을 피우고 있어 티도 잘 안 나지만, 자신을 성장시키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올림픽공원 2018.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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