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솔리스의 <경험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를 읽고
그렇다. 때로는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이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알 때도 분명히 있다. 아직 모르고 있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제공하면 곧 알게 된다. 최소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야말로 계속 모르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묻는 행위는 당신의 팀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고객조사의 핵심이다.
고객은 자기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 책은 '그렇다고 고객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 계속 모르는 상태로 남게 된다'고 말한다.
요즘 이 메세지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 서비스, 비즈니스도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용 고객의 니즈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자주 사용성 테스트나 인터뷰를 하자는 의견이 형성됐다.
Right question for the right answer. 많이 물어보는 것보다 어떻게 물어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A를 출시할 건데, 쓰시겠어요? 얼마를 내시겠어요?"라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인터뷰 당했을 때 나도 거짓말한 경험이 있다. 특히 대면 인터뷰일 때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사례를 읽으면서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힌트를 얻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경험 디자인을 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의도와는 심각하게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경험 설계란 고객 여정 전체에 걸쳐서 고객이 바라는 감정과 결과와 능력을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정의는 이렇게나 간단하지만, 현업에서는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아무래도 프로젝트나 단기적인 목표에 매몰되어서 전체 경험의 맥락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순간마다 맥락을 유지하기엔 아직 역부족인 것 같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한 발자국씩 떨어져 고객 여정 전체를 바라보아야 겠다.
변화는 리더가 아니라 중간층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간 일을 해오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가지 핵심적인 특징을 파악했다. 바로 정치가의 대인관계 기술과 법률가의 설득 기술이다. 당신이 동원한 팀을 진심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증거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들을 한데 모으고 결집해야 한다.
Product Manager에게도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PM은 사업팀과 개발팀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두 사이드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주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의도), 이 일을 왜 지금 해서는 안 되는지(우선순위)를 설득하게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텔레테크의 고객솔루션 부사장 숀 캐리더스Sean Carithers는 기업이 제공하는 경험과 관련해 고객이 갖고 있는 희망사항을 인상 깊게 요약했다.
• 기업 전체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가 선호하는 바를 기억할 것이다. 기업은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고객에 대한 통찰을 수집하고 공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 내가 하는 경험은 기업 전체와 모든 채널에 걸쳐 일관될 것이다. 기업은 최적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체계적인 데이터와 적절한 제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 기업은 나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고 있으므로, 내가 하는 경험은 시기적절하고 지금 필요한 경험일 것이다. 고객에 대한 통찰을 모으고 고객을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를 운영함으로써, 모든 상호작용(상품, 홍보, 가격 책정, 판매 등)을 고객의 필요와 선호에 적합하게 맞출 것이다.
• 이러한 일관성과 적절성은 채널이나 상품이 달라져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채널은 통합되고, 모든 채널과 상품군에서 고객 경험이 유연하게 연결되도록 고객을 관리할 것이다.
• 시간이 갈수록 나는 당신의 기업을 점점 더 신뢰하게 되고,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고객은 제품/서비스가 '당연히 고객 중심적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당연히 그렇게 설계해야 하고,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일단 자기가 돈을 냈고, 본인은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고 믿기 때문에 고객을 위한, 고객 중심적인 제품/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제품/서비스가 그 기준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물론 회사는 고객이 너무 싫거나 고객을 괴롭히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에는 1) 돈, 시간, 인력 등의 리소스가 너무 많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실패했거나, 2) 회사 내 이해관계에 얽혀 실현되지 못했거나, 3) 그것도 아니면 그냥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1~3 혹은 그 이상의 이유를 이겨내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고객은 그런 내부 사정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결과적으로 본인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 분야의 권위자인 닐슨과 노먼은 언젠가 이렇게 썼다. “모범이 될 만한 사용자 경험의 첫째 요건은 고객에게 정확히 필요한 것을 지체 없이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다음 요건은 소유하는 것으로도 사용하는 것으로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순함과 우아함이다.” 특히 그 필요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한 적 없는 것일 때 더욱 중요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에게 '소유하는 것으로도 사용하는 것으로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1순위는 역시 애플 제품. 특히 내 삶의 질을 향상시킨 아이패드와 에어팟이 떠올랐다. 2순위는 (뭔가 민망하지만) 우리 회사 제품. 3순위는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세 가지의 공통점은 나의 기대를 배반한 적이 없어서 두터운 신뢰가 있고, 그 제품/서비스의 고객이라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뿌듯함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사용성이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고 그 제품에 관해 배울 때 얼마나 쉬운지 그 정도를 의미한다. 또한 디자인 과정에서 사용 편이성이나 참여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노먼의 동업자인 제이컵 닐슨Jacob Nielsen은 사용성의 요소를 이렇게 정리했다.
• 학습용이성Learnability: 사용자가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때 얼마나 쉽게 기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가.
• 기억용이성Memorability: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사용자가 다시 그 디자인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쉽게 다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 불안정성Errors: 사용자가 내는 오류는 얼마나 되며,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쉽게 회복할 수 있는가.
• 효용성Utility: 디자인의 기능성을 말한다. 즉 디자인이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가.
• 유용성Usefulness: 사용자가 원하는 것인가.
가장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유용성'이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제품/서비스의 유용성 보다는 이미 잘 되고 있는 제품/서비스의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무언가를 추가할 때 그 유용성을 판단하는 게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대부분의 고객은 지금 상태만으로도 자신의 니즈가 충족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무언가는 쓸데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제품/서비스를 계속 확장시키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현재의 고객도 만족시키고, 미래의 고객까지 끌여당기는 것이 참 어렵다. 그래서 기존 고객의 경험은 그것대로 보전해주고, 새로운 고객의 니즈도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상태의 여정 맵을 바탕으로 그 위에 시스템 여정 맵을 만든다면, 현재 고객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된다. 미래 상태 맵을 바탕으로 한다면, 앞으로 창출하고자 하는 고객 경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시스템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아낼 수 있다.
'고객들이 현재 경험하는 것'이나 '다른 서비스의 고객 경험'을 참고할 생각은 했지만, 미래 경험을 상상한 뒤에 그에 맞게 시스템을 설계할 생각은 못 해봤다. 관점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