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 디 에어>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영화 <인 디 에어>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어요. 이 영화에는 앞에서 소개한 책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목록>과 참 어울리는 주인공 빙햄(조지 클루니)이 등장합니다. 빙햄은 일 년 중 322일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다른 회사의 해고를 대신 통보하는 일을 하는데, 그는 이런 삶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집보다는 호텔 방과 기내가 편하고,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는 신념하에 복잡한 연인 관계를 피해 가벼운 관계만 갖죠. 그는 무엇보다도 자유에 집착하며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까지 밀어내고 비워냅니다.
빙햄은 따뜻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해고하는 일을 할 때만큼은 ‘존엄 (dignity)’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회사에 들어온 후배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제시한 혁신적인 화상 해고 시스템을 결사반대하죠. 이 회사가 하는 일이 아무리 못 할 짓이어도,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면서요. 실제로 그는 사람들을 해고할 때 모든 게 안전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이게 인생의 끝이 아니다, 이건 새로운 시작의 씨앗이다. 네가 바라던 삶을 추구할 기회가 생긴 거다. 마음을 다칠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듣는 우리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하죠. 과연 이걸 기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앞으로 ‘2020년대에 보면 새롭게 보이는 영화’로 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빙햄이 코로나 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화 속에서 그는 ‘불경기는 우리의 기회’라는 말을 합니다.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실직했을 테니, 그의 업계는 호황이었겠네요. 하지만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화상 해고 시스템을 결국 도입하고, 비행기는 못 타게 되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사이에 기술이 더 발전해 해고 절차에 사람이 필요 없어져 그도 해고를 당했을지도요.
방금 제 상상만큼이나 영화의 결말도 참 절묘합니다. 모르고 보아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스포일하지는 않을게요. 이동진 평론가의 "냉혹한 자본주의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의 감촉."이라는 코멘트로 이 영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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