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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Sep 19. 2021

이토록 찬란한 재난

김초엽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세상이 망한다면, 살아남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쟁취하려는 쪽과 함께 뭉쳐야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쪽으로 나뉠 거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게 김초엽은 항상 후자를 그리며 절망의 상황에서도 긍정성을 놓지 않는 작가입니다. 그의 신작 <지구 끝의 온실>도 그럴 거라고 믿고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표지에서 풍기는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도 한몫했고요.


최지수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한 표지

<지구 끝의 온실>은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자가 증식 먼지 때문에 ‘더스트 폴’이 닥친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느 날 하늘을 뒤덮은 더스트는 내성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도시를 보호하는 돔에 사는 사람과 돔 밖의 사람으로 세상을 나누었습니다.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별 이유가 없어도 내성을 가진 사람들을 해치고, 돔 안에 사는 사람들은 돔으로 밀려오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아마라, 나오미 자매는 가족과 고향을 강제로 떠나 돔 밖을 떠돌고 있습니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도피처 마을, 프림 빌리지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목적도 없는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프림 빌리지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쫓겨난 내성종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기이한 소문이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케퐁 지역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두 시간쯤 차를 타고 달리면, 도피처가 위치한 숲이 나온다고. 그 도피처는 지하에 감춰져 있거나 돔으로 덮여 있지 않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을 그대로 맞으며 더스트 이전의 마을처럼 그저 놓여 있는데, 내성이 없는 사람들도 그곳에서는 멀쩡히 살아간다고.


더스트로 닥친 재난이 끝나고 그 위에 재건된 미래, 2129년. 한국의 식물 연구원 아영은 유령 도시 해월에서 증식한 식물 모스바나의 정체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부터 종식 직후까지 독점 종이었다가 재건 이후에는 서식지가 감소했던 식물인데, 갑자기 해월에서만 이상 증식이 일어난 겁니다. 그리고 해월에는 푸른빛이 보인다는 이상한 소문도 함께 떠돕니다. 아영은 두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아영은 좀처럼 모스바나와 그 푸른빛을 떨쳐낼 수 없었다. (…) 무성한 덩굴식물과 푸른빛. 아영은 분명 그런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이희수의 정원에서였다.


아마라, 나오미 자매와 프림 빌리지. 그리고 아영과 식물 모스바나, 이희수의 정원. 두 시공간은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다가 하나의 점으로 만나 반원을 그립니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프림 빌리지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지, 그곳은 정말 천국 같은 곳일지 혹은 함정일지. 아영이 이희수의 정원에서 보았던 덩굴식물은 해월에 증식하는 모스바나가 맞을지, 그렇다면 이희수는 누구인지. 이야기가 흐를수록 생기는 물음을 한 꺼풀씩 벗겨 내면서요.  


모두 돔 시티 안에서는 답을 찾지 못해서, 돔 시티 밖에서 대안을 꿈꾸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결국 무너져. 돔 밖에는 대안이 없지. 그렇다고 돔 안에는 대안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야. 나오미 네 말대로 돔 안은 더 끔찍해. 다들 살겠다고 돔을 봉쇄하고, 한줌 자원을 놓고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지.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 끝의 온실>은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독자에게 안깁니다. 재난이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전부 존경받아 마땅한가요? 이타적일수록 살아남지 못하고, 이기적일수록 살 수 있었던 환경이라면요? 어쩌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는 방법을 연구해낼 능력이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모두가 제대로 밥을 못 먹을 만큼 힘든 시기인데도, 식물을 연구하는 온실에만 밤낮없이 전기를 공급하는 건 비윤리적인 걸까요? 만약 애초에 마을을 유지하려면 온실이 보전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했던 거라면? 평소라면 고민해 보지 않았을 질문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를 맴돕니다.


소설을 읽고 난 뒤면 프림 빌리지의 잔상이 진하게 남습니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울창한 산, 위태로울 만치 높이 솟은 나무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습도가 느껴지고, 그 안에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특히 읽는 내내 <미나리>의 OST를 함께 들어서 더 찬란했습니다. 광활한 대지, 노스탤지어와 자연을 떠올리는 선율 덕분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여름이 가기 전에 이 소설을 읽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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