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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Nov 05. 2022

생각이 많아 미안합니다.

내가 이상한건가?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그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 많아도 너무 많아 단순한 길을 돌고 돌고 돌아서 가게 된다는 것.

아니, 오히려 생각만 하다가 한 걸음 내딛지도 못하고 포기해버린다는 점.




최근, 글쓰기모임에 갔었다. 서로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쓴 글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그런 모임이었다. 나는 모두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 탓에 적당히 낯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모임의 분위기를 익혀가는 중이었다. 내가 조금 겉돌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페르소나의 대가인 INFJ 답게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리액션에 몰두하고 있던 상태였다.



내 글을 발표하는 차례였다. 크게 고민하고 썼던 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맺혀있던 응어리 중 하나를 저 구석에서 꺼내어 쓴 글이었다. 십수년전부터 이어져온 케케묵은 가족과의 갈등, 가족이기 때문에 더욱 더 깊어지고 단단해져 끊을 수 없었던 갈등의 고리를 담은 짧은 글이었다. 덤덤하게 글을 쓴다고 썼는데, 최대한 덤덤하게 쓴다고 했는데도 내 글이 제일 감정 과잉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는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읽는 내내 얼굴에 열이 훅 올라 금세 새빨개졌고,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글의 마침표를 읽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줄줄 설명했다. 중언부언, 제대로 끝도 못맺을 말들을 그냥 계속 뱉어냈다. 다들 가볍게 웃고 떠드는 자리인데, 혼자만 딥해지는 것이 싫어 내 차례를 빨리 후루룩 넘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글은 이미 딥했고, 또 딥한 질문들이 날아들어왔다.

 


왜 그런 갈등이 생겼냐했다. 난 갈등이 생긴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은 어떠냐 했다. 물론 지금도 갈등을 겪고 있다고 했다. 데면데면한 사이 정도라고.


풀어보려고 해본 적은 있냐고 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모임 사람들 사이에서 은은한 미소가 날아들었다. 나를 안쓰럽고, 어리게 보는 눈빛들. 너무 혼자 가련해보이는 것 같아 난 손사레를 치며 지금은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허허 웃었다. 글이라는 게 무릇, 마음에 난 상처를 막대기로 긁어가며 나온 진물로 써야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쓴 것 뿐이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참 안타깝게도, 순서는 쉽게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이런 말들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


" 이 글을 그 사람에게 선물로 줘보면 어떨까요?"


"오, 맞아요. 정말 너무 감동받을 것 같은데!"


그 말들은 그저 활자 그 자체로 내 눈앞에서 와르르 부서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끄덕이며, "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하고 감사하다고 손을 모았다. 제발 내 차례가 빨리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올리면서.






감사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진심으로 따스한 말을 건네준 것이 감사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는, 억울했다. 그저 이렇게 두서없이 쓴 글을 그 사람에게 내밀어서 풀릴 갈등이었으면 이렇게 글을 쓰지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떠올려봤다. 오늘 쓴 이 글을 선물하는 나. 예쁜 편지지에 예쁜 글씨로 꾹꾹 눌러써 고이 접어 손에 쥐어주는 나.



쉽게 밟혀 버려지거나, 화를 돋궈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까지 상상이 되었다. 혹은, '대체 뭔 말이야?'하고 흘기며 물어보는 그 사람의 얼굴도 생각났다. 나에게 '편지를 전해줘라.' 라고 말한 그 사람들 눈 앞에도 이런 모습들이 상상될지 궁금했다. 그들의 눈 앞에는 훈훈한 결말이 펼쳐져 있었을까. 서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서로 안아주는 그런 결말이 있었을까.



부모님께 반항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난 탁자 밑에서 괜히 손장난을 치며 끓어오르는 반항심을 삼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그렇게 쉽게- 내 글을 그렇게 쉽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난 그 다음부터는 왠지 웃음기를 잃었다. 꼭 중2병에 걸린 환자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자괴감이 뒤따라왔다. 적어도 그들은 날 걱정해서 해준 조언이었고, 오히려 그들은 그것이 정말 좋은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바보같이 끙끙 거리며 숨어있다가 갈등을 키운 쪽은 내쪽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간단하게, 먼저 다가가 진심을 담은 편지 한 장 건네주는 것으로 바로 풀려버릴 얄팍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너무 소심한데다 그걸 밖으로 표현도 못하는 애라서 그 감정을 두텁게 쌓아올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 타고오는 지하철에서는, 옆에 앉은 여자가 12시 통금이라도 있는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며 조금 늦는게 뭐 어떠냐며 사정사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순간 안쓰러워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가 이내 전화를 끊고 옆 친구에게 큰소리로 '야- 우리아빠 개무섭지 않냐?이렇게 나오면 졸라 무서워.' 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진 마음이 사라졌다. 내 앞에 서있던 여자는 핸드폰으로 웃긴 동영상이라도 보는지 내 귀에까지 콧소리가 들릴 정도로 흥- 흥- 하고 계속 웃어댔다. 주변에 민폐라도 끼칠까봐 큰소리를 내거나 함부로 웃지도 않는 나에게는 그들이 괜히 부러웠다. 혼자 삭히다 일을 키운 내가 이상하기만 해보였다.



그저 갈등은 갈등이고 싸운 건 싸운건데, 나는 그 매듭에 고리에 고리를 점점 더 이어붙였다. 그리고 그 고리들을 단 한번도 상대방에게 표출해본 적이 없다.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 기저에 깔린 것이다. 이번 일도, 난 내 글을 그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없다. 이는 내가 몇 년간 그 사람을 혼자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이미 견고해져버린 편견이라 깰 수가 없는 어떤 것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바로바로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러워진 하루였다. 누군가가 "편지를 건네봐요!" 라고 할 때 진심으로, "우와-! 그럴게요!" 할 수 있는 해맑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실제로

"정말 편지를 건넸더니 너무 감동받더라구요! 덕분에 화해했어요, 감사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도 너무 부러웠다.



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고, 다음 모임에 패잔병처럼 축 처진 모습일거다.


이 글도 그 용기없음의 표현이다. 정말 나는 생각이 많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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