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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n 16. 2017

'남들이 보고 있다.'는 착각

나를 끊임없이 구속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마음

커피숍이나 공항, 대합실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바로 앞이나 옆에 있는 사람의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거의 모두가 경험했을 신기한 현상이 있다. 북적대는 장소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쪽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아도 멀리서 부르는 내 이름에 바로 반응하는 것을 ‘칵테일 효과’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여 시끄러운 칵테일파티에서도 누군가 나를 부르면 바로 그쪽을 보게 된다는 이론인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가장 큰 관심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론이다. 세상의 중심이 나는 아니어도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지나 칠 정도로 ‘나’에게 집착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관심을 표시하면 그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하고 고마워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부르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습관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부부 사이나 소원했던 지인들과의 친밀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 줘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다. 그래서 일단 처음 보는 사람과 명함이라도 주고받을 일이 있으면 일단 이름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다음에 우연한 기회라도 마주치거나 통화할 일 있을 때 “아 반갑습니다. 000 씨!”라고 하면, 상대는 감격한다. 비록 티를 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 즉 나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일어나는 또 다른 부작용이 있다.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나를 향한 CCTV, ‘조명 효과’라는 것이다.

나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와 관련한 불편한 기억들이 많다.

 “그렇게 입고 나가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남들이 가만히 있을까?” “남들이 보고 있어!” “제발 좀 다른 사람 좀 신경 써라.” 말만 보면 나보다 남이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위 말들의 진짜 핵심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내 가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보니 세상 누구에게도 조금의 단점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무조건 좋은 점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남들은 관심도 없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게 된다. 가끔 골프 방송 때문에 직접 필드에서 골프 선수들의 화려한 샷을 볼 때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실력이 화려한 선수도 카메라를 들이 대면 아마추어 도잘 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종종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한마디. “어휴, 카메라가 들이대니까 신경 쓰여서 못 치겠어요.” 이 역시 남들이 아주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중소기업에서 편집대행회사 대리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 31살 은수가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또래 여성이 그러하듯이 이성과의 만남, 연애, 결혼, 친구들의 삶,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그를 둘러싼 이야깃거리 들인데, 역시나 본인의 모습에 너무나 관심이 많아서 지나칠 정도로 상대를 의식한다.

‘김영수’라는 5살 많은 사업가와 소개팅을 하는 자리.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대화에서도 은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의식한다.

‘김영수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부녀 회장의 소개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워 보이셨나 봐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과가 어찌 되든 부녀회 소속 아줌마들의 수군거림이 예사롭지 않을 텐데? 그의 등 뒤편에 둘러선 일군의 투명한 인간들이 내 모습을 날카롭게 품평하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어깨가 움츠러든다.’

눈동자가 커질 일도, 어깨가 작아질 일도 아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제 갓 첫인사를 했을 뿐인데 주인공은 수는 너무나 앞서 가고 있다.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과하게 신경 쓴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은수의 ‘시선 의식’은 계속된다.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어라. 구급대원은 제법 해사한 인상에 콧날이 날렵한 미남자다.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머리칼을 살그머니 귀 뒤로 넘겼다. 남자 친구- 아니, 뭐, 어쨌거나 나와 같이 있다 봉변을 당한 남자- 가 급작스레 날아든 축구공을 맞고 기절하여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는 이 긴급 상황에서 외간 남자의 미모에 현혹되다니.’

“넥타이 되게 싫어하시나 봐요?”

“아, 예 답답 해서.”

“하긴. 저도 안 매 봤지만 답답하긴 할 것 같아요. 그래 도남의 결혼식에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가요?”

“아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나는 눈가의 주름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애쓰며 웃었다.’

‘식당에서 습관적으로 갈비탕에 받을 말고 나서야 후회가 되었다. 국에 만 밥을 퍼먹는 것보다, 밥 따로 국 따로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조신해 보였을 터다. 입을 조그맣게 오물거리면서, 깍두기도 곁들이지 않고 식사를 했다…… 타인의 눈에 스스로가 ‘정상적이고 반듯한 커플’에 속해 있다고 여겨질 때 여자는 미묘한 자긍심을 느낀다. 남자들도 그럴까?’

‘김영수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다다미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덕분에 지퍼도 없는 롱부츠를 최대한 우아하게 벗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내가 사는 원룸 빌라로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집 상태가 어떻더라?’

소설 속의 은수처럼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는데 나는 혼자서 그들이 나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심리. 그래서 그 시선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도 모두 알아차릴 것 같아서 항상 조바심 내는 것. 마치 연극 무대 주인공이 무대에서 혼자 대사를 할 때 집중 도를 높이기 위해 주인공에게 단독 조명을 쏘는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심리가 바로 ‘조명 효과’이다. 

‘칵테일 효과’가 됐든 ‘조명 효과’가 됐든, 모든 게 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간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이 말이 과소평가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에 대한 평가부터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내려야 하지 않을까?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타인의 시선은 더욱 크고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우울해질 수 있고 나를 더 구속하게 되고, 어이없는 판단과 행동을 만들 수 있다. 소설 속 은수는 무엇보다 이것부터 깨달아야 진정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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