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무장해제되는 코멘트
45년생 희비가 교차한다. 짜증내지 마라. 57년생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 고달프다. 69년생 인간관계란 시간을 두고 쌓아가는 것이다. 81년생 별일 아닌 문제로 속 썩지 마라. 93년생 돈이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어느 신문에난 ‘오늘의 운세’에서 닭띠의 운세를 그대로 적은 것이다. 신문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는 코너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닭띠가 아닌 사람이 이 글을 한 번 읽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하루를 살다 보면 희비가 교차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45) 누구나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다. (57) 그렇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인생이 고달프다.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있겠는가. (69) 속 썩는 일들은 별일 아닌, 사소한 것들이 더 많다. (81)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이 돈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93)
너무나 당연한 얘기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렇게 평범한 말들인데도 자기 것만 보는 사람에게는 신기하게 이 말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딱딱 들어맞는 것처럼. 닭띠만 이렇게 평범한가 싶어서 바로 위에 있는 원숭이 띠의 해석을 봤더니 거의 비슷한 뉘앙스다.
44년생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더 불행해진다. (당연한 거 아님?) 56년생 괘념치 마라. 살다 보면 곧 잊힌다. (이런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68년생 자식에게 관재수가 생겨 마음이 아프다. (68년생이라면 요즘 세상에선 딱 그럴 수 있는 연령대다.) 80년생 남보다 가족에게 먼저 신경 쓰라. (가장 일을 많이 할 세대이니 언제나 가족에게 미안하다.) 92년생 가까운 사람의 배신이기에 더 아프다. (마침 금요일이어서 대부분 20대에겐 아주 적절한 코멘트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평범하고 그저 그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코멘트인데도 이 ‘오늘의 운세’ 코너가 건재한 까닭은 뭘까? 다른 건 몰라도 많은 사람이 이 ‘오늘의 운세’를 즐겨 보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럼 왜 이런 진부하기까지 한 표현들을 즐겨 보는 것일까?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해당하는 띠와 생년의 글만 신경 써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본인에게 닥칠 걱정거리나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걱정거리들과 하나씩 대입해 본다. 그러다 하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오늘의 운세’에 대한 맹신과 함께 그 코너를 제일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오늘의 운세’는건재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토대로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의 성격까지도 맞힐 수 있다! 혹시 당신은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스스로 강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지? 아니면 당신은 겉으로는 규율을 잘 지키고 자제력이 있는 편이지만 속으로는 사소한 일에도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성격은 아닌지? 이것도 아니면 당신은 외향적, 사교적이고 애교도 있지만 그런 한편으로 신중하며 조심성이 많은 내향적인 면도 겸비한 성격은 아닌지? 그리고 당신은 낭만적인 성격 탓에 약간 비현실적인 소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지?
‘아니 어쩜 이렇게 잘 알지?’하며 놀랄 일이 아니다. 잘 읽어 보면 문장 안에 상반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이면 모두 다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심리학자 포러 (Bertram Forer)의 실험 예문을 그대로 따 온 것뿐이다. 포러 교수는 학생들에게 ‘당신의 성격 진단 결과’라는 이름으로 이 글을 제시하고, 이 분석이 자신에게 얼마나 맞는지를 5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했더니 평균 점수가 무려 4.26이 나왔다고 한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나(계나)는 제목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한다. 한국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봐야 마이너로 사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외국으로 가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내심 걱정은 된다. 어느 날 친구들의 권유로 용하다는 별 도령을 만난다.
“어디 멀리 가시려나 봐요?”
‘내생 년월일을 들은 별 도령이 노트북 화면을 잠시 들여다 보고는 뱉은 말에 숨이 막히더라고.’
숨이 턱 막히는 이 한마디에 주인공 혜나는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다. 몇 마디 주고받은 후에 별 도령은 결정타를 날린다.
“저…… 호주 가려고요.”라고 말했어. 별 도령이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라. “역학에서 섬나라는 기본적으로 음기가 강한 걸로 보거든요. 음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지금 계나 씨 사주는 호주랑 잘 맞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조언을 해드리는 건 호주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고…… 제 블로그를 보시면 액세서리를 파는데, 그중에 청룡을 테마로 한 것들이 있어요. 목걸이나 휴대폰 줄 같은 걸 구입하시면 거의 항상 몸에 지니게 되니까 참고하세요. 그리고 말씀드려야 할지 약간 고민스러운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얘기해주세요.”
‘그러니까 별 도령이 하는 말이, 내 사주에 도화살이 있대. 그게 호주에 가면 제법 힘을 발휘한다나.’
외국에서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모험일 수 있고,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런 사람에게 이 정도 수준의 얘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들릴 수 있다. 별 도령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낼 수밖에. 소설엔 나와 있진 않지만 계나는 이미 액세서리를 그 자리에서 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바로 다음 페이지에 냉정을 되찾은 주인공의 반성이 뒤따른다.
‘생각해보면 별 도령의 예언은 참 실없었어. 점쟁이를 찾아오는 고객이라면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한테 “어디 멀리 가시려나 봐요?”라고 물으면 다들 그렇다고 하지. ‘멀리 간다.’는 말은 이사를 가려는 사람에게도, 졸업 이후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누군가와 헤어지려는 사람에게도 다 적용되니까. 도화살 얘기도 그래. 외국 나와서 마음은 붕 떠 있지, 간섭하는 부모는 멀리 있다. 아는 사람 없으니 외롭지, 호르몬은 들끓지, 호주에 와서 이성 교제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한 거야.’
별도 령도 그렇고, ‘오늘의 운세’도 그렇고 지극히 평범한 표현이었을 뿐인데, 그것을 듣거나 본 우리의 마음은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보편적이며, 일반적이고 모호한 방식의 표현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포러(Forer) 효과, 혹은 바넘(Barnum) 효과이다. 결론적으로 이 포러 효과가 말하는 결정적인 한마디는 ‘사람들은 막 연하 고일 반적인 성격 묘사가 다른 어떠한 사람에게도 맞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 자신에게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 주위에 별 도령과 같은 존재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훅 빠지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꽤 기분파이면서도 어느 순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타입의 성격이군요.”라고 꼭 친해져야 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드는데 좀처럼 기회가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쓱 던져보라. 그럼 상대에게 의외의 반응이 온다. 상대는 순간적으로 ‘아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참 많구나.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는 마음속 깊숙하게 감춰놓은 비밀까지도 털어놓게 된다. 반대로 나도 똑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오늘의 운세’나 ‘별 도령’의 말속에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비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