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뛰어야만 사랑이 아니다
어색한 두 남녀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위한 데이트 코스로 서울랜드나 에버랜드 등이 꼽힌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런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 같이 과격한 기구를 타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흥분상태가 된다. 이런 흥분 상태에서 갑자기 고백을 하면 상대가 사랑을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한 실험에서 처음 보는 한 쌍의 남녀가 높은 곳에 있는 다리를 나란히 건너게 한 후, 서로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낮은 곳에 있는 다리를 건넜던 커플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는 조사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성공을 위해서 이미 시도를 했거나, 지금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당연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을 만들려면 의식적으로라도 내 가평 소에 미소를 자주 짓거나 크게 웃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소프트 웨어를 바꾸기 전에 하드웨어부터 바꾸면 자연스럽게 소프트 웨어가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논리인데, 사랑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상대를 보고 호감을 느끼면 심장 박동수가 올라간다. 그렇다면 미리 심장 박동수를 올려놓고 상대를 바라보면, 이미 심장은 크게 뛰고 있는 상태고, 다시 말해, 흥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무심하게 바라보던 상대 로다르 게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평소에는 심장 박동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빨라지고 흥분 상태가 된다는 것은 신체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심신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동시에 도파민이 분출된다. 온통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스트레스도 사라지면서 두통, 치통 각종 통증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콩깍지 페닐 에틸아민이 분수처럼 솟는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시기다.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때, 남자의 매너가 없는 것도 터프해 보이고, 고집이 센 것도 자기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양말을 벗어 아무 데나 던져놓아도 용서가 되고,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 먹고 싶은 음식만 앞세워도 서운치가 않다. [i]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은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는 남자 선배의 속눈썹에 반해 짝사랑에 빠졌다고 얘기해서 황당해했던 기억도 있다.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예쁠 뿐이다. 사실 페닐에틸아민과 도파민은 마약의 주성분이다. 이 성분이 든 마약은 흥분 작용과 함께 부분적으로 감각 인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구름 위에 올라 탄 기분’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닌 셈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거나, 구름 위에 올라 탄 기분이거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심신의 상태가 이미 정상이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즉, 사랑에 빠지거나 새로운 만남을 가지려면 상대의 심신 균형이 잘 잡힌 상태에서의 시도는 백전백패 할 확률이 높다. 앞서 얘기한 아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떨거나, 360도 회전하는 등 급격하고 과격하게 돌아가는 롤러코스터도 좋지만 그보다 일상에서 시도할 수 있는 더확률 높은 방법이 있다. 이것 역시 불균형을 야기시키는 것인데, 뇌를 극도로 많이 사용하게 하는 방법이다. 평소보다 뇌를 급격하게 많이 사용하면 심신의 방전이 온다. 바로 이 순간이 새로운 사랑의 기운이 싹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에 50분의 1 정도 밖에는 안되지만, 사용하는 에너지는 몸 전체의 20%를 쓴다. 그만큼 평소에도 뇌는 혹사당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또 무언가에 에너지를 쏟으면 바로 뇌는 탈진 상태에 가깝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이성에 대한 경계심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박현욱의 장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덕훈과 인아는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 진행 중에 만났고, 작은 호감만 갖고 있다가 둘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건 프로젝트가 완성된 후회식 자리였다. 그리고 둘은 전격적으로 결혼했고, 꿀맛 같은 신혼에 맛에 푹 빠진 덕훈은 아내 인아의 일이 많은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아내는 그 후에도 계속 늦게 들어왔다. 아내는 회사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내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던 날들도 많았다. 고개가 조금 갸웃거려지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프로젝트 계약 기간이 끝나던 날 아내는 파김치가 되어서 들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너무 힘들었어. 걸핏하면 철야작업이야. 마지막 날까지 야근하기는 또 처음이네.”
“저런, 마지막 날인데 회식 안 하고 야근했어?”
“다른 사람들은 회식 자리 갔고 내 파트에서 문제가 생겨서 나만 일했지. 일끝 내고 전화해 보니 회식도 끝났대, 어쨌든 다 끝나서 후련하다.”
그러다 인아는 두배의 페이를 보장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경주로 갔고, 그 둘은 주말 부부로 지내는데…… 그러다 사달이 난다. 아내가 또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폭탄선언을 하는데.
“나, 사람 생겼어.”
“뭐라고?”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언제 알게 된 사람인데?”
“알게 된지는 오래됐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거든. 이번 프로젝트하면서 다시 만났어.”
“정말 그 사람이 좋아”
“응.”
여러 가지 이야기와 논란거리가 많을 수 있는 내용이라 이후 내용은 생략하고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상황은 모두 격렬하게 일을 한이 후라는 것. 즉 인아에게 지금의 남편과 곧 생길 남편 모두 격한 업무를 마치거나 하는 도중에 만나서 사랑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보는 남녀를 모아서 커플을 만든 후, 각자 작은 방에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몇 시간씩 집중 토론/분석하는 작업을 시켰다. 그렇게 정신 에너지를 소진시킨 후, 두 사람을 같이 있게 했더니……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 커플일수록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더 ‘육체적 친밀감’을 표현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ii]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머리를 써 가며 일을 한다는 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의 세계에서 하는 일이다. 의식의 세계에서 일을 할수록 혈당이 떨어지면서 에너지를 급격하게 소비한다. 그래서 의식의 세계에서 관장하는 자제력이나 의지력을 발휘할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는다. 자제력과 의지력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를 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예쁘게 보이거나 멋있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덕훈과 인아처럼. 그리고 인아의 새로운 남편처럼.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위에 직장에서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야근하다가 정들어서 결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었는데 깜짝 발표를 해서 놀랐던 경험 두어 번쯤은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신적 에너지 고갈로 인한 자제력, 의지력 저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혹 주위에 관심이 있는 이성이 있다면, 놀이 공원이나 계곡 다리 같은 곳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보다는 아예 퇴근 후에 두꺼운 서류의 오탈 자를 검색한다든지, 원서를 해석하는 작업을 같이 해보는 게 어떨지. 상대가 정신적으로 아주 피곤한 상태가 되면, 내가 손 사랑의 화살이 상대의 가슴에 명중할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니 말이다.
[i] 브레인미디어 ‘사랑의 콩깍지 씌우는 페닐 메틸 아민’ 2012.10.6 김보희 기자
[ii] 우리는 왜 생각에 속을까? 크리스 페일리. 엄성수. 인사이트 앤 뷰.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