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불안한 여성
‘걱정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당신은 즐겁기만 하세요.’ 걱정 인형으로 유명한 모 보험회사의 광고 카피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광고를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괜한 걱정을 하는 존재이니까.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걱정을 알아서 잘 찾아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고 걱정한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크게 기뻐하면서 또 다른 걱정을 즐긴다. 어차피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대부분 일어날 확률도 낮은 게 대부분이다. 걱정을 사서 하는 걸로 따지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특히 더하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보험 광고를 잘 만들었다고 하는 거다. 대부분의 보험 계약은 여성들이 하니까. 여성의 심리를 잘 다독여주는, 평범하지만 멋진 광고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이 데이트를 할 때, 남성이 여성의 대화 중에서 가장 많이 당황하는 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빠 지금 무슨 생각해?”와 “오빠 만약에 있잖아……”이 도 가지 말은 무조건 베스트 5안에 들어 가리라 확신한다. 이두 가지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법을 터득한 남성은 안타깝게도 별로 없는 듯하다.
“오빠 지금 무슨 생각해?”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이번엔 두 번째 주제, 여성이 ‘만약에……’의 화법을 즐겨 쓰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어쨌든 ‘만약에’도 걱정이 잔뜩 함유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낱말이니까.
“자기야 만약에 있잖아…… 어머니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야?”
“만약에 있잖아…… 내가 먼저 죽으면 재혼할 거야?”
“만약에 있잖아…… 우리 둘이 모두 회사를 나가게 되면 어떻게 해? 돈은 어떻게 벌어?”
“만약에 있잖아…… 내가 회사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남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하고 싶은 말들이다. 현실에 밝은 남자들의 반응은 거의 다 똑같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말도 안 되는 걸.” 이렇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의도치 않은 말싸움을 하게 된다.
모르긴 해도 이런 ‘만약에……’ 시리즈 때문에 곤욕을 치른 수많은 남성들이 지금 초 집중을 하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사랑하는 여인만 유독 ‘만약에’를좋아하는 것일 것?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상 모든 여성들은 걱정을 즐긴다. 그래서 ‘만약에’로 말을 시작하는 것도 더더욱 즐긴다.
이혜린의 소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에서 주인공 이라희는 개인적인 시간이라고는 1초도 허락하지 않는 신문사 연예부 인턴 기자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하루에 평균 5-10명의 사람을 새로 만나 명함을 주고받는다. 휴대폰 통화목록에는 하루 오십여 개의 수신, 발신 기록이 남는다. 1시 간만 자리를 비워도 노트북 화면에서 메신저 대화 창이 열 개가량 켜져 있다. 부장은 시도 때도 없이 내 이름을 불러대고, 매니저들은 밤 12시에도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다.’
이 정도면 숨쉬기도 바쁘다. 이런 와중에도 이라희는 새로운 걱정 시리즈를 쏟아내고 있다.
‘이 정도면 다음 출장에 날 빼진 않겠지? 중요한 기사를 물 먹이진 않겠지? 내 결혼식에 와주겠지? 나는 매니저와 마주 서서 다정하게 수다를 떨면서도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 중 일 것이다. 이 정도면 내일 기사를 하나 써주겠지? 내 가수에 대해 나쁜 기사를 써야 할 때면 적어도 미리 전화 한 통은 해주겠지? 사장님한테 스포츠 엔터는 접수했다고 보고해도 되겠지? …. 내가 이 일을 그만둬도, 계속 연락할 수 있을까?’
자신의 걱정도 모자라서 상대방의 걱정도 미리 예측하는 정성을 보여주는 이라희.
‘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의 이정숙은 여성은 원시 시대 때부터, 그러니까 적어도 100만 년 전부터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존재였다고 한다. 남성이 사냥을 위해서 동굴을 나서면 여성은 아이와 함께, 혹은 혼자 동굴에 남는다. 쉽게 말하면 동굴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사람이 사냥을 위해서 자리를 비웠으니, 동굴은 오로지 여자 혼자 남아서 지켜야 한다.
남자가 없는 사이, 동굴에는 비바람이 몰아칠 수 도 있고, 맹수가들이 닥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부족에서 공격을 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사냥을 나갔지만, 빈손으로 들어 올 수도 있으니까 비상식량이라도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이 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주변 동굴이나 이웃과 돈독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어 놔야 한다. 그러니까 동굴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파악을 하고,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대응 할 수 있다.
여성은 원시 시대 때부터 이런 걱정을 하면서 백 만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 그러니 여성에게 이제 걱정은 어떤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냥 몸이나 뇌에 각인된 유전자라고 보는 게 이해가 빠를 듯싶다.
결론으로 얘기하자면, 여성은 그냥 걱정을 시작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남자 입장에서는 ‘걱정’이나‘만약에’에 대한 대응이 아주 쉬워진다. 같이 걱정하거나 되물으면 되니까.
“만약에 있잖아.. 우리 둘이 동시에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응? 둘이 동시에? 우와…… 진짜 큰 일이다. 어떡하냐?” 식으로 되묻거나 아니면 ‘그런 걱정으로 평소에 고민이 많았구나…… 내 가미처 몰랐다. 내가 더 잘해서 고민 없게 해 주마.’ 식으로 마무리를 해주면 최상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예기치 않은 여성의 돌발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얼어붙거나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해 쩔쩔맬 가능성이 높다.
원래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질문하기’이다. 주도권을 더더욱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골라서 하면 아주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밖에 또 어떤 방법들이 있지요?’라는 질문을 하면, 이미 상대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한 상태인데 또다시 번거롭고 껄끄러운 질문을 받은 셈이니 더 당황하게 된다. 그런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질문을 한 나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 방법이다. 그런데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느닷없이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은 대부분 상상도 못 하였던 질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남자는 쩔쩔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쩔쩔매거나 당황하게 되면, 여성의 걱정은 더더욱 커진다. 그리고, 어렵게 침착을 유지하면서 답변을 했다 해도 ‘그것 말고 또 다른 건 없어?’라고 추가 질문이 들어오면 식은땀이 난다. 대화는 더더 욱 꼬여만 간다. 여성의 입장은 사실 나의 걱정이 이런 게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 달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저 갑자기 생각난 고민이나 걱정을 같이 고민하고 공감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얘기한 것뿐인데,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면 여성도 같이 당황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 낸다. ‘이 남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아냐?’
한 나라의 대통령도 여성의 걱정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만큼 여성의 걱정은 버라이어티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남성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글쎄 이건 방법을 찾는 문제가 아니 괴이하여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앞의 글을 찬찬히 읽었다면 여성의 걱정에 대해서 감히 해결을 하겠다는 만용은 금물임을 충분히 이해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