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선의 법칙'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부른다. 더구나 내가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직급이 높은 사람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 더구나 처음 만났다면 저절로 진땀이 난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그때의 표정을 거울로 본다면 가관일 것이다. 표정은 절대로 거짓말을 못하니까.
언젠가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런 난처한 상황을 소재로 삼아서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신혼부부와 양가의 아버지가 어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신랑이 나가더니 곧바로 신부도 급 한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간다. 갑작스럽게 둘 만 남은 양가의 아버지. ‘어흠’ 하며 헛기침을 연발하는 아버지들. 서로 눈길을 피하며 어쩌다 눈 이마 주치면 어색한 표정만 주고받는다. 눈이고 손이고 어디다 둘 지 몰라 몸을 이리저리 꼬고 있는데 시계 의초 침 소리만 크게 들린다. 여전히 밖으로 나간 양가의 자식들은 돌아올 줄 모른다. 1초가 1년 같은 그 시간… 이런 상황만 보여주는 데도 관객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누구나 겪었을 상황이고 누구라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공통의 관심사를 얼른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것도 쉽지 않다. 사전에 조사를 했을 리도 없고 뜬금없이 “취미는 뭐죠?”라고 묻기도 난처하다. 묻는다 할 지라도 내가 전혀 모르는 취미가 상대방으로부터 나오면 대화는 더 미궁으로 빠진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런 미궁에서 빠져나와 환하게 빛을 만들어 내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편혜영의 장편 소설 ‘선의 법칙’에서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중 한 명인 윤세오는 미연이랑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다. 윤세오는 미연이를 친한 친구 이상으로 의지한다. 미연이도 처음에는 그게 좋았지만 새로운 남자 친구 ‘부이’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윤세오와 멀어진다. 윤세오는 질투와 고립 감으로 쩔쩔매다가 미연의 새 남자 친구 부의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는다. 윤세오가 부의와 친해지면 미연과 부의가 멀어지게 될 것이고, 그럼 미연이 다시 본인에게 올 것이라는 욕심 때문에. 부의를 싫어하면서도 부의에게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래야 미연이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의는 윤세오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미연의 친구라는 것 이외에는 관심 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윤세오는 부의의 환심을 사야만 한다. 한 동네에 사는 그들 셋. 언제나 부의와 미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기회만 노리고 있던 윤세오에게 우연히 기회가 왔다. 부의와 버스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부이에게 어딜 다녀오느냐고 물었다.
“교회”
부이가 짧게 대답하고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세오는 부이가 진지하고 심각한 면모를 가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부이는 그저 할 말이 없었을 뿐이다.
“티셔츠 예쁘다. 잘 어울려.”
“그래?”
뭔가 내키지 않는 듯한 대답이었다. 질문을 더 하지 않는 게 좋지 싶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아내고 싶었다.
“어디서 샀어?”
부이 역시 윤세오가 그저 티셔츠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님을 알아챈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만이었다.
“이런 프린트 흔치 않거든.”
알록달록 커다란 부엉이가 프린트된 티셔츠였다. 얼룩말이나 호랑이였더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 무늬가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부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킥 웃었다.
“왜?”
윤세오가 다정하게 물었다. 따져 묻는 것처럼 보이면 비밀스럽게 굴 테니까.
미연이랑 너 말이야. 참“
대화를 들어보면 부이의 마음속에 윤세오가 진입에 성공한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더구나 윤세오 입장에서 부의는 강력한 사랑의 라이벌이다. 당연히 부의가 좋게 보일 리 없다. 그런데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리고 부의에게 접근한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랄까? 윤세오가 별로 멋져 보이지도 않는 티셔츠에 관심을 보이자 부이가 그 관심을 덥석 문다. 부의는 세오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미연이의 얘기를 바로 꺼내고 있다. 윤세오 입장에서는 단순한 관심 표현이었는데 부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상 밖의 소득을 얻은 셈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든 성인이든 이런 식의 관심은 아주 효과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심지어는 큰 결례를 저지를 수 있어 대화의 소재로는 금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패션이나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상대의 패션, 연출 감각에 관심을 갖는데 기분이 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처음 보는 상대와 단 둘이 있다면 나도 부담이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 상대가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도록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서 이 어색함을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얼굴을 볼 것이 아니라 상대를 감싸고 있는 것부터 주목해보자. 뭐가 됐든 일단 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그걸 화제로 삼으면 된다.
“00가 아주 멋진데요?”
“어디서 사셨어요?”
“평소에 이런 스타일 좋아하시나 봐요?”
“선물 받으셨다고요? 선물하신 분이 센스가 대단한데요? 또 선물 받으신 건 없으세요? 와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렇게 삼 단계까지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아 이 사람이 나와 뭔가 통하는 게 있구나.’를직감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처음 보는 상대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앞 예문의 부의처럼 '나와 통하는 데?'를 넘어서 ‘나를 좋아하네? 역시....!’ 까지도 갈 수 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고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여기까지 가면 그다음의 대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더 좋은 점은 다음에 다시 만난다 할지라도 전혀 부담이 될 리 없다. 상대방은 본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뭔가 남다를 장치(?)를 하고 나올 테고 나 또한 그것을 놓치지 않고 또 관심을 표현해주면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건시 간 문제다.
예전에는 기자들 사이에서나 사용됐던 말인데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해진 낱말이 있다. 바로 ‘팩트’라는 말인데 상대와의 어색함을 없애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법으로도 ‘팩트’는중요한 역할을 한다. [i] 평소에 과묵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에게도 이런 ‘팩트’를 기반으로 한 칭찬이나 훈훈한 말 걸기는 아주 효과적으로 성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당신에게 2주의 여유가 있다면 책을 읽고, 2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영화를 보고, 단 2분의 여유밖에 없다면 그림을 보라.” 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아주 훌륭한 방법 중 하나인데 상대방의 몸을 2초만 훑어보길. 눈에 띄는 무언가가 반드시 보인다. 그‘팩트’를 바탕으로 말을 건네 보시라. 그럼 1초도 버티기 힘든 어색한 상황에서 상상하지도 못할 풍성 한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상상하지 못한 관계와 성과물을 얻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먼저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갖지 말자. 부담은 어차피 나나 상대나 마찬가지로 있다. 이때 먼저 다가서자. 사람은 참 묘해서 뜻하지 않은 호의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그 호의를 더 많이 되갚으려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마치 '선의 법칙'의 윤세오처럼.
[i] 회사의 언어. 김남인. 어크로스. 2016.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