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김애란의 장편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인 아름이는 남들보다 빨리 늙는 선천성 조로 증 환자다. 16살의 소년이지만 80세의 신체 나이를 하고 있는 아름이는 수시로 병원에 들러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고 죽음은 더 빠른 속도로 가까이 오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그런데 아름이는 자신의 몸이 약해지는 것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있다. 검사를 위해서 병원을 오갈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13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자그만 몸에 이미 80대 노인 외모의 아이가 엄마와 손을 잡고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는 당연히 낯익을 수는 없다.
병원 밖으로 나온 뒤 슬쩍 어머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엄마.”
“응?”
“사람들이 우릴 봐요.”
“내가 너무 예쁜가 보지.”
….. 오히려 재촉을 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어머니의 곤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어, 걸핏하면 치맛자락을 잡아끌곤 했다. 오늘도 나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으니 빨리 좀 가자고 어머니를 채근했다. 어머니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상체를 숙여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름아.”
“네?”
“너 언제부터 아팠지?”
“세 살요…… 엄마가 그렇다고 했잖아요.
“그럼 얼마 동안 아팠던 거지?”
“음, 십사 년이요.”
“그래 십사 년.”
“……………”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사 년.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
사 람마 다다르겠지만 가끔씩 우리는 친구나 동료, 혹은 후배들의 인생 상담(?)을하거나 인생 고민을 들어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상대가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심어주고 또 위로를 해야 하는데 마음은 아프지만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 힘들겠구나. 어떡하니……” 정도가 대부분이다. 이런 대화 방식도 그렇게 나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최소한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금 너만큼 나도 아프다는 것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위의 소설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아름이에게 엄마가 “그래 많이 창피하겠구나…… 나도 그렇단다……” 식으로 대화가 이어진다면 아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느 정도 위로는 됐겠지만 아름이의 상처만 더 커지거나 오히려 아름이가 ‘괜찮아요’라며 엄마를 위로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소통은 이루었지만 대화 당사자 모두가 원하는 사이다 같은 맛없다. 하지만 사실은 이 정도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회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너 때에는 다 그래, 나도 그랬어. 괜찮아.”식의 ‘다 알고 있어.’ 투의 말투나 “그런 건 아니지. 일단 네가 잘못한 거야.” 식의 잘잘못부터 가리려고 하는 말투. 또는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돼.”식으로 결론부터 성급하게 내리려는 말투가 그렇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본인의 기준으로만 모든 것을 보려 하고, 그 기준대로 상대를 끼워 맞추려는 방법으로는 되려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상대가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무언가 위로를 해야 하고 또다시 일어서기 위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든 그 상황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객관화하는 것이 우선이고 최선이다.
차동엽 신부의 ‘천금 말씨’에는 저항을 줄이는 4단계 부탁 법을 소개하고 있다.
1. 상황 서술 2. 느낌 서술 3. 바람 서술 4. 부탁 서술의 방법인데, 어린아이가 문을 세게
닫았다. 이때 그 아이가 다음부터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게 하기 위한 방법인데 구체적으로는 이런 식이다.
“방금 문을 세게 닫았지?” (상황 서술: 일어난 사태를 정확히 관찰해서 객관적으로 표현)
“엄마가 ‘꽝’하는 소리에 너무 놀라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느낌 서술: 그 일과 관련해 생겨난 ‘나의 느낌을 차분히 말한다.)
“엄마는 네가 문을 조금 살살 닫아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바람 서술: 그 느낌에서 비롯한 나의 어떤 욕구나 바람을 전달)
“그래서 부탁인데, 네 가 앞으로 문 닫을 때는 살살 닫아줄 수 있겠니?”(부탁 서술: “~해줄 수 있겠니?” 도움을 청한다.)
어떤 아이라도 이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너무나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문을 세게 닫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앞에서 인용한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엄마가 아름이의 아픔을 위로하는 과정에서도 이 대화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너 언제부터 아팠지? 십사 년…… 그런데도 우린 포기하지 않고 검사받고 있지?”(상황 서술)
“매일매일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느낌 서술)
“그러니까…… 천천히 걸어도 돼.”(바람 + 부탁 서술)
나와 친한 누군가가 외로워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가 나에게 힘들다고 할 때에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인정을 바라는 것일 뿐이다. ‘나는 원래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닌데 네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빨리 인정을 해 줘.’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은 거다. 아름이도 분명히 엄마에게 ‘나는 당당하고 싶어요. 엄마가 인정해주세요.’를 마음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그런 아름이의 욕망을 엄마는 정확하게 알고 해결해주었다. 나의 후배가, 동료가, 혹은 가족이 나에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이럴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그를 중심으로 상황을 객관화해서 정리해주면 된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네가 만든 결과이고, 네가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잘 온 것이다.’를 얘기해 주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답을 찾고, 스스로 만든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늘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