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중심의 직선 언어
인터넷에서 발견한 남녀 커뮤니케이션 차이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깨가 쏟아질법한 신혼부부. 더구나 오늘은 외식까지 근사한 곳에서 함께 하고 들어왔으니 분위기가 나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내는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진 듯한 외로움에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내는 그 힘든 마음을 남편 몰래 일기에 적는다. 도대체 부인은 왜 힘들어하는 걸까?
여: “저녁 내내 남편이 좀 이상하다. 오늘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쇼핑을 했는데, 그 때문에 조금 늦었다고 화가 난 것 같긴 하지만, 남편이 그래서 그렇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남편도 그러자고 했지만 그다지 입을 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도 ‘아니;’라는 말 뿐이다. 내가 잘못해서 화가 났냐고 물었다. 화난 거 아니라고,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란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냥 웃어 보이면 서운 전만 계속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남편은 그냥 조용히 앉아 티브이만 봤다. 너무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우리 사이에 침묵만이 흐르자, 나는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약 15분 후 그도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위축돼 보였고 다른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 같아 보였다. 그가 잠들자, 나는 울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다른 사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인생이 재앙이다.”
모르긴 해도 부인의 고민만 듣고 있으면 지금 이 부부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 듯하다.
지금 남편의 머릿속에는 부인의 자리는 이미 없어졌고, 다른 여성 이남 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흔히 이혼 사유로 말하는 ‘성격차이’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이 여성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는 걸 깨워서 빨리 숨겨 놓은 여자를 실토하라고 닦달을 해? 아니면 남편이 자는 틈을 타 주머니를 뒤져 보거나 휴대폰을 열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남자의 진짜 속마음을 모른다. 남자의 마음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여성의 말만 듣고 판단을 하고 있다. 자 그럼 남자의 속마음은?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남편은 오로지 단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남편: “바이크 시동이 안 걸리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재미를 따지기 이전에 허탈하기까지 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남녀 커뮤니케이션의 차이는 실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 든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여성은 단순해 보이는 남자가 한없이 가벼워 보일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복잡성과 예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유정의 장편 소설 ‘28’을 보면 주인공이 소방대원 기준이 아내와 통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소설 전개와는 상관없이 남녀 커뮤니케이션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축으로부터 생긴 신종 전염병 때문에 기준이 근무하고 있는 마을이 폐쇄 직전 상황. 갓난아기와 함께 있는 아내가 걱정되는 기준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아내를 본가나 친정이 있는 제주로 보내려고 한다. 물론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남편인 기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내와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 없이 시집에 가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짐을 챙기라고 말한 건, 남구에서 환자가 발생한 어제 오전이었다. 아내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갑자기 왜?”
“오늘 유빈이 데리고 서울 집에 가라고.”
‘아내는 되받아 치듯 대꾸했다.’
“누구 죽일 일 있어?”
“어차피 설 쇠러 가야 하잖아. 하루빨리 간다고 생각해.”
“설이고 추석이고, 나 혼자는 안 간다고 했잖아.”
“그럼 친정으로 갈래?”
“설 연휴에 무슨 재주로 비행기 표를 구해? 구한다고 해도 기준 씨가 거기 갇혀 있는데 나만 어떻게 가. 당신 어머니가 알면 나를 또 얼마나 잡겠냐고. 유빈이 둘러업고 짐 이고 지고 가는 것도 심란하고.”
자 이제 질문. 과연 기준의 아내는 남편에게 친정으로 가겠다는 말을 한 것일까?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일까?
본문에 나와 있는 다음 지문은 이렇다.
‘아내의 어법상, 보내주면 가겠다는 얘기였다.’
어지간한 남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내가 언제 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나? 분명히 가봐야 길도 험난하고 시어머니 볼 면목도 없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비행기 표 구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한 것도 누구보다 아내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아내의 어법상 가겠다는 얘기라니. 어찌 보면 남성에게는 들어도 들어도 신기하고 생소한 어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아내의 말을 120% 알아듣는다. 그러면서 아내의 말을 이해 못하는 남자를 이해 못한다.
결과중심주의이고 또 두괄식의 대화를 선호하는 남성은 대화 방식 역시 짧고 의미가 분명하다. 여성 입장에서는 단순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그러기 이전에 남성이 여성과 다른 생물학적인 유전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남자 뇌 모드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 ‘집중모드’ 다이다. 남자들은 원시시대 때부터 가족을 위해서 사냥을 해왔다. 그래서 사냥은 남자의 생존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어서 뭐가 됐든 사냥만큼은 잘해야 했다. 이 사냥을 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집중’이다.
사냥꾼의 뇌는 사냥감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남자는 뭔가에 몰두하면 다른 말은 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직선 언어 모드’이다. 사냥을 하다 보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사냥꾼끼리의 대화는 항상 짧고 간결해야 하고 또 직선적이어야 한다. “멈춰.” “기다려” “뛰어” “찔러” “잡아”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말은 간단하고 직설적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백만 년 전부터. 이렇게 적어도 백만 년 이상 누적된 남자들의 행동 모드들이 쌓이고 쌓여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눈치 없이 말하고, 또 자기중심적으로만 말하는 언어 사용 특징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단두어 가지의 이유만으로 남성 커뮤니케이션 특징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사냥꾼 습성이 태생적으로 몸에 배어있는 남자들이 섬세하고 감정의 폭이 크고 다양한 화법을 구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 큰 무리일 수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대화는 통하지 않는 이성과의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답답하다고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상대는 나와 다른 유전자가 깊숙하게 들어 있다는 것과 그 유전자가 대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이해한다면 저절로 답답함이 풀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