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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n 18. 2017

무엇이든 돌려 말하는 여자

섬세하고 예민한 여성은 말도 섬세하고 예민하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너만 모르는 남녀 언어 번역기’라는 글이다. 

①   “자기야~”의 속 뜻은?  여: 나는 ~~ 을 원해.          남: 그냥 부른 것임. 

②   “뭐 해”의 속 뜻은?    여: 너의 시간을 나에게 투자해. 남: 정말 뭐 하냐고 물어본 것임.

③   “휴~”의 속 뜻은?      여: 내 고민 좀 해결해 줘.      남: 그냥 한 숨 쉰 것임.

④   “오늘 속 상한 일 있었어” 여: 내 편 들어줘.  남: 그냥 그렇다고.

⑤   “야 말 걸지마.”     여: 풀릴 때까지 달래주지 않으면 더 화낼 거야.

 남: 진짜다. 말 걸면 죽는다.

   ⑥ “연락하지 마.”        여: 화 풀릴 때까지 1초라도 문자가 끊기면 우리 인연도 끝이야.

                   남: 레알 연락하면 죽여버려.

   ⑦ “머리 좀 새로 할까?”  여: 지금 이 상태도 예쁘다고 해. 당장.

                             남: 이런 거 절대 안 물어봄.

 누구나 똑같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겪어봤을 상황이다. 상황이 이 정도니 ‘금성 여자 화성 남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같은 말을 쓰는 외계인. 그래서 보면 볼수록 그냥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절묘하게 아픈 무언가가 있다. 남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왜 같은 말을 두고 여자는 다르게 표현할까? 왜 여자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저렇게 돌려서 얘기를 할 까? 왜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게 반대로, 혹은 반대 비슷하게 얘기하면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을 단순하다고 탓을 할까?

 앞 서남 성의 언어 체계는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까 사냥을 주업으로 했던 원시시대 때부터 형성된 것이라는 언급을 했었다. 그래서 신속하고 재빠른 성공을 위해서 사냥에 참가했던 구성원들의 대화도 역시 짧고 간결하고 분명해야 했다. “숨어”, “기다려”, “찔러”, “공격!”처럼. (이것도 성이 안차서 짧은 수신호로 대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에 결과부터 나와야 한다. 결과 중심주의와 두괄식의 대화를 선호한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남자가 가장 많이 구사하는 말 중 하나다. 그렇다면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특징도 오랜 시간을 염두하면서 탐색하는 것이 좋다. 남자가 사냥을 하던 원시시대 때에 짧고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여성은 과연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했을까? 

 [i] 여성은 기본적으로 원시 시대 때부터 가정을 지키고 꾸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동굴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양육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남자에 비해서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다. 그래서 온도나 바람 등 외부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지금도 남성보다 여성이 날씨 예보에 상당히 민감하다. 만약 강수확률이 40%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성은 우산을 챙기겠지만, 남자는 강수확률은 알 바 아니고 외출할 때 비만 오지 않으면 무방비로 나간다. 여성은 이렇게 성격이 섬세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잔소리를 많이 하고 까칠하게 말하는 경우가 잦다. 섬세하기 때문에 작은 변화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 변화가 신경 쓰여서 다소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 특유의 섬세 모드로 집에서 자녀를 키우고 사냥 나간 남자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쉽게 얘기하면 예민하고 날카로우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섬세한 성격에 더해서 여성은 ‘감정 조절’을 아주 옛날부터 터득해 왔다. 여성은 절대로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대신 에둘러서 말을 한다. 이 부분 때문에 현대의 많은 남성들이 애를 먹고 있는데, 이것도 당연히 이유가 있다. 여성은 남자가 사냥해 온 사냥감을 잘 손질해서 다음 사냥까지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가 사냥을 하다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자신의 생존도 당연히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남자가 사냥을 나가기 전에는 절대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분노나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야 했다. 대신 돌려서 말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리고 여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염려와 걱정’이 있다. 여성들이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낱말이 ‘만약에......’라는 말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물론 연애를, 결혼을 경험한 남성이라면 100% 안다. 수도 없이 들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 ‘만약에’때문에 수시로 반복해서 확인하고 검증한다. 또 같은 구성원끼리 서로 반복 확인을 해야 안심하고 만족한다. 

그럼 왜 여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사서 하게 되는 걸까?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서 그때의 생활을 이해해야 한다. 원시시대 남자는 사냥을 하러 나갔다. 그럼 동굴에는 여성과 그 자식들만 있어서 힘을 쓸 사람이 없다. 남자가 없으니 동굴에 맹수라든지 침입자가 들어올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위급한 상황의 대비책으로 이웃과 돈독하게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도움을 준비해야 하니 그 이웃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할 때는 지시보다는 부탁하는 말투로 대화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여성 들은 이런 배경으로 말미암아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식량을 구해 오는 남자의 감정을 눈치껏 살펴서 안전할 때만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래서 중요한 말도 빙빙 돌려서 말하고, 참았다가 나중에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사소한 것이 큰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시시콜콜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태도를 만들게 됐다. 그리고 언제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앞서서 걱정하는 사고방식까지 덤으로 형성한다. 그러니 여성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에둘러 말하는 표현 스타일을 남자가 바로 알아듣는다면 그것 자체가 미스터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인공 은수는 지금 태오와 집에 같이 있다. 태오를 좋아하긴 하지만 태오가 그녀의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태오와 같이 있는 것 역시 행복하지만 은수는 또 은수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태오가 어떻게 보면 늘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은수의 자유를 훼방하고 공간을 빼앗고 있는 셈이다. 빨리 태오가 나갔으면 좋겠다. 한참을 고민하는 은수는 어렵게 태오에게 나가 달라는 말을 꺼낸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나가야 돼. 친한 친구가 웨딩 촬영이거든. 하루 종일 도우미 노릇 해주기로 했단 말이야.” 그러나 태오는 내 말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눈치였다. 뭐가 문제냐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침 일곱 시엔 나가야 된다고. 자기 잠들어 있을 텐데 혼자 놔두고 갈 순 없잖아.” 찜찜하지만, 어물쩍 핑계를 만들어 보았다. 

“나도 같이 가면 되잖아요. 일곱 시? 나도 그때 일어날게요.”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현대사회에서 남녀가 따로 존재하는 사회는 특수한 곳 말고는 거의 없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남성은 싫든 좋든 여성과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고 그리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인데, 살다 보면 전혀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선행된다면 혼자 속만 끓이거나 대화 자체를 포기하는 일 없이 아주 깔끔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 수 없다. 역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나 소통을 위해서는 잘 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미처 몰랐던 상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고, 결국 그것이 나에게 강력한 소통 무기가 될 수 있다. 


      

[i] 눈치 없는 남자, 속 좁은 여자. 이정숙. 랜덤 하우스. 2009.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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