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석현 Jul 24. 2017

RED의 숨길 수 없는 매력

RED의 심리 효과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 중에 이문세의 ‘그대’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본격적으로 스타가 되기 이전의 노래이니 상당히 오래된 노래다. 아마이, 삼십 대는 처음 접하는 노래일 것이다..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이렇다.

 ‘그대 고운 두 눈은 맑은 호수~ 파란 하늘이 있는 것 같아. 그대 고운 목소리는 싱그런 바람~ 살며시 내 마음 스쳐가네요. 그대의 입술은 붉게 닳아요. 눈부신 노을처럼 정말 예뻐요. 그대 고운 마음씨는 하얀 눈 같을 걸. 아마도 나는 그대를 무척 좋아하나 봐.’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눈은 호수 같고, 목소리는 바람이고, 마음씨는 하얀 눈이다. 모두 매력적이지만, 정작 예쁘니, 아름답다는 소리는 없다. 결정적으로 예쁘다는 노랫말은 노을처럼 붉게 닳아 오른 그녀의 입술이다. 붉은 입술을 보고서야 ‘정말 예뻐요.’라며 감탄한다. 역시 입술은 붉은색이어야 남성들의 사랑을 받나 보다. 그런데 그냥 붉은 정도가 아니라 새빨간 색이라야 제대로 인 것 같다.

 인터넷에‘앵두 같은 입술’을 검색해보니,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 하나만 살짝 인용을 하면 ‘왕은 아무리 수연이 열심히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연의 탐스런 붉은 앵두 같은 입술이 눈에 들어와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얘기일 수도 있고, 유치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주제는 아니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중‘실내화 한 켤레’엔 14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 셋이 나온다. 경안, 그리고 혜련과 선미. 혜련과 선미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만났지만, 경안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그러다 헤어숍에서 TV의 모 프로그램에 개봉을 앞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경안이 출연한 것을 알아본 혜련은 수소문 끝에 경안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셋은 연락이 된 그날 경안의 오피스텔에 모여서 예전 추억을 되짚으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경안이 기억하기에 혜련은 고등학생 때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혜련은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애였다. 미에 대한 기준이 좀 색다른 애들도 혜련이 제일 예쁜지 어떤지는 몰라도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실만은 인정했다.’ 그에 비해 선미는 예쁘기는 했어도 혜련 만은 못했나 보다. ‘선미 또한 예쁜 얼굴임에는 분명했다…… 선미는 한 때 피부 트러블이 심해서 여드름이 이마와 양 볼을 뒤덮기도 했는데, 그것만 아니었다면 굉장히 예쁘게 다듬어 놓은 신사임당의 초상과 흡사할 고전적인 동양 미인의 얼굴이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술과 함께 중고등학교 때 추억으로 꽃을 피우다. 레이프 가렛[i]의 춤과 노래를 회상하다 갑자기 나이트클럽을 간다…… 그렇다면, 30을 훌쩍 넘긴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이트클럽을 갔을까? ‘경안의 복장은 흰 탱크돕에 푸른 카디건, 짧은 진 반바지로 결정되었다. 경안은 알딸딸한 체 눈을 감고 그들이 짙은 화장을 해주고 머리에 젤과 무스를 발라주는 대로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혜련이 가방에서 커다란 링 귀고리를 꺼내 경안에게 걸어주었다.’ 미선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하게 표현한 것은 없고, 다만 혜련의 얼굴을 표현한 대목에서 나의 눈이 번쩍 띄었다. 

‘혜련이 새빨갛게 칠한 입술을 삐쭉거렸다.’

혜련은 얼굴만 예쁜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돋보일 수 있는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방법을 터득한 여자였다.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 하나 만으로도 어지간한 여성은 눈길을 끈다. 그만큼 붉은색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붉은 정도를 넘어서 새빨간 색이라면 더더욱 강렬한 인상과 함께 섹시함을 선사할 수 있다. TV홈쇼핑에서 이미용 상품을 진행하는 여성 쇼(핑) 호스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금방 이해가 간다. 대부분 옅고 투명한 화장이지만 입술만큼은 아주 붉게 연출한다. 노 메이크업에 가까운 얼굴을 커버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이유가 크다. 아름다움을 판매하는 이미용 상품의 쇼(핑) 호스트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그것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지 않은가. 아마도 남성들은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는 여성이 있겠지만, 그저 느낌만으로 하는 얘기가 아닌,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여자 친구, 반대로 남자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과 함께 사랑의 약속을 짧게 적을 카드를 사려한다. 어떤 색의 카드 봉투를 살 것인가? 모르긴 해도 초록색 카드는 이상하다. 블루 계열의 카드도 좀 그렇다. 노란색의 봉투는? 역시 느낌이 와 닿지는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레드 계열의 색이 어울린다. 딱히 이유를 댈 건 없지만. 

또 하나의 실험이 있다. 여성들에게 서로 다른 색 테두리 액자에 있는 다른 색 옷을 입은 남자 사진을 보여주고 각 남자의 매력에 대해 평하게 했다. 그리고 매력도를 1점에서 9점까지 평가하도록 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남자는 누구일까? 빨간색 테두리 액자 안에 있는 빨간색 셔츠 차림의 남자 사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크리스 데일리의 ‘왜? 우리는 생각에 속을까?’란 책에 나오는 얘기다. 카드 얘기는 살짝 각색을 했지만, 어찌 됐든 밸런타인데이에는 빨간색 카드 외에 파란색이나 초록색 카드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직감으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은가?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나이트에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 혜련과 친구 둘은 어느 남성을 만나고, 이렇게 여자 셋, 남자 한 명이 경안의 집에서 모두가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다. 평소와 다르게 메이크업을 하고 평소완 다른 옷을 입고서 나이트에 간 경안에게는 이 성과의 별다른 얘기가 없다. 그러나 빨갛게 입술을 칠했던 유부녀인 혜련은……

결론적으로, 빨간색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빨간색은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몸 전체를 빨간색으로 뒤덮는 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옷이든 액사서리든, 아니 면발 간 입술이든 어딘가 붉은 포인트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패션에 크게 구애받지 말자. 단, 빨간색은 모든 사람을 더 섹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i]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드라마 배우이며 1970년대에 가장 유명한 청소년 아이돌로 꼽혔다. <위키백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