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21 Avril 2015
파리에서의 두 번째 날이 맑았다. 한인민박 집에서 같은 방을 쓰는 한 친구와 오후에 만나 저녁을 먹고 함께 에펠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얼마나 큰지. 그 두려움이 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에 비례해 얼마나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지. 파리에 도착한 첫날, 낮의 에펠탑만 보고 온 것은 파리의 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다. 낭만적인 파리가 한 순간에 무섭고 두려운 곳이 되기도 한다는 걸 많은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
혼자라 더 두려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에펠탑 야경을 보고 싶어 하는 친구를 만난 건 참 행운이었다. 그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고, 이곳에 왜 왔고, 어떤 사람인지보다 더 중요한 건 같은 걸 보고 싶어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건 여행이 주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
약속시간이 조금 늦은 오후라 혼자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 마레에 가기로 했다. 개선문처럼 마레도 누군가의 사진을 통해 계속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으니까.
파리에서의 두 번째 날. 아직 익숙하지 않은 파리 메트로에 몸을 싣고 마레에 갔다. 첫 목적지는 마레에서 인기가 있다는 Nanashi라는 음식점. 민박집에서 이른 조식을 먹고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나온 터라 배고픔을 느낀 나는 마레를 구경하기 전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나이를 하나씩 먹으면서 못하겠는 게 점점 늘어만 간다. 원랜 혼자서도 음식점에 가 밥을 잘 먹는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 눈에 난 여행자로 보이겠지. 여행자는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까지 보통 사람들보다 허용 범위가 넓어지기도 하니깐. ‘난 여행자다. 여행자.’를 속으로 되뇌며 Nanashi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가게 안에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입구 쪽에 직원들이 길게 모여 앉아 있어 자리에 앉기 전부터 왠지 모를 부담감이 몰려 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난 여행자다. 여행자.’를 속으로 되뇌며 창가 쪽에 비어 있는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인터넷에서 미리 주문할 메뉴를 정하고 갔는데, 내가 고른 그 메뉴는 주말에만 판매한단다. 직원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칠판에 흰 분필로 적힌 메뉴판이 보였다. 하지만 전부 프랑스어로 적혀 있어서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 게다가 혼자라는 긴장감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친절한 직원이 영어로 설명해줘도 이미 머리는 핑글핑글. 하지만 문득 Viande가 소고기를 뜻하는 단어라는 게 떠올랐다. 아는 게 그것뿐이니 Viande가 적힌 메뉴로 주문을 하고 샐러드를 함께 시켰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보니 건너편 카페에선 한 파리지엔느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건너편 여인과 나는 얼마나 비교가 될까. 나는 얼마나 여유롭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그 여인처럼 여유롭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나마 일본식 퓨전 음식을 선보이는 가게라 일본이 직원이 있는 건지 주방 쪽에서 간간이 들리는 일본어가 -무슨 말인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였으니까- 조금 안심하게 해주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이 맛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엄청 맛있지도 않았다. 맛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부담감과 긴장 때문이었을까. 결국, 나는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겼다.
여행자의 여유와 삶의 여유는 비슷한 것 같지만 참 많이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파리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도 점점 그들 삶 속에 있는 여유를 알아갔고, 1년쯤 지났을 때는 내가 봤던 그때 그 건너편 카페에 앉아 있던 여인과 어느 정도 닮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난, 낯선 음식을 먹다 체한 사람처럼 미숙하고 어리숙한 여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