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23 Avril 2015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나는 잘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게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파리는, 에펠탑은, 첫눈에 반하기엔 내겐 너무 꿈 같은 곳이었다. 여전히 그곳은 꿈 같은 곳이지만, 그곳엔 첫눈에 반했다기보다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몽마르트(Montmarte)는 좀 달랐다. 아베쎄(Abbesses)역에서 나오는 그 순간, 나는 몽마르트에 반하고 말았으니까. 반할 만큼 날씨도, 참 눈부셨다.
영화 <아멜리에>에 나오는, 알록달록 무늬의 벽화가 그려진 원형 계단을 오르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맑디맑은 하늘. 그리고 이제는 어디서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파리의 흔한 어린이들을 위한 회전목마. 예전에 봤던 영화 <아멜리에>의 통통 튀는 장면들이 단번에 떠오를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역에서부터 펼쳐졌다.
먼저, 역에서 가장 가까운 사랑해벽(Le Mur des je t’aime)을 찾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여행의 동선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사랑해벽을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랑해벽 앞으로 가서 세 군데에 있다는 한국어로 된 사랑의 말을 혼자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찾았다. 그러다 왜 뒤집혀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찾았고, 이어 ‘사랑해’와 ‘나 너 사랑해’도 찾았다. 수많은 언어 중 한국어를 보니 왠지 모를 반가움과 함께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도 사랑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사랑.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로맨틱함 때문인지 세계 곳곳에서 온 수많은 연인들이 이곳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사람과 함께는 아니었지만, 사랑이라고 적힌 우리말을, 그리고 그 말이 적힌 이곳 몽마르트를 사랑하고 사랑하게 됐으므로, 그런 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 남겨두기로 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나는 우리말 ‘사랑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의 사랑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단어의 형태만 다를 뿐 사랑은 사랑이니까 그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사랑해벽을 나와 몽마르트 언덕으로 가려는데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 책자에 나와 있지 않은 성당이었지만, 햇빛에 반짝이는, 벽돌과 타일로 장식된 성당이 너무 예뻐 보여서 살짝 들어가 보기로 했다.
조용하고 고요하고. 파리에서 본 첫 성당은 그랬다. 함께 들어간 노부부 한 쌍과 젊은 여인 한 명이 전부였던 성당.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조차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는 조용하고 고요하고 따뜻했던 곳. 스테인드글라스가 빛과 만나 오래된 마룻바닥에 그린 반짝임이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딱 내 마음 같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성당엘 잠깐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나도 엄마를 따라 성당에 다닌 모양인데,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받았던 세례명만은 기억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발음이 예뻐서 오랫동안 그 세례명을 기억하고 종종 인터넷에서 아이디나 닉네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성당에 있으니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엄마 생각도 나고, 내가 파리에 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도 하고 싶고, 파리에서의 첫 성당이기도 해서 초를 하나 켜기로 했다. 수금함에 유로 동전 하는 넣은 나는 초 하나를 집어 들어 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하고 큰 성당보다 비록 사람은 없었지만, 조용했고, 고요했고, 그래서 더 많은 생각들을 깊게 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 초를 켜고 소원을 말하고 고맙다는 말을 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