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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ada Nov 10. 2016

몽마르트의 맛

Le 23 Avril 2015


 원래는 여행 책에 나와 있는 동선대로 몽마르트(Montmarte)를 구경할 요량으로, 세탁선부터 찾았는데 길을 잃었다. 그러다 마주한 몽마르트의 골목들은 길을 잃어도 불안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길을 잃고 싶게 만드는, 그런 묘한 매력으로 나를 몽마르트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게 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 멋쟁이 모자를 쓴 파리지앵 아저씨가 이동식 오르골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달콤한 소리에 나도 잠깐 멈춰 서서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들었다. 음악 소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근처 카페에서 커피잔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들이 더해졌다. 관광객들이 많은 몽마르트지만, 가장 파리다운 이곳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참 달콤했다.



 달콤함을 가득 품고 다시 길을 걸었다. 조금 걸으니 고흐를 비롯한 몽마르트의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카페 르콩슐라(Le Consulat)가 나왔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artre)이랑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기념품도 아까보다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기념품 가게 한 곳에 들어갔다. 기념으로 엽서 몇 장을 사려고. 


 어렸을 땐, 온갖 엽서를 다 모았다. 문방구에 산 몇백 원짜리 엽서들은 아직도 누군가에게 보내지지 못한 채 내 방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다 쓰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따금 기분이 내킬 때면 엽서를 사곤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그런 기분이 이따금이 아니라 종종 든다. 동전 몇 개로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덴 이만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손에 들려 있는 건, 좀 전에 산 몇 장의 기념엽서, 카메라, 그리고 파리 여행 책에서 뜯어온 몽마르트에 대한 페이지 몇 장.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허기가 졌다. 아직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해 프랑스 가정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몽마르트 맛집 하면 나오는 무수히 많은 곳 중에 내가 선택한 곳은 르 뿔보(Le Poulbot). 맛과 가격도 선택하는 데 한몫했지만, 혼자 점심을 먹기에도 좋을 곳 같았다. 내가 안내받은 자리는 길게 늘어서 있는 테이블 중 안쪽 끝에 있던 테이블. 자리에 앉아 보니 빈티지한 내부 인테리어와 일렬로 늘어서 있는 와인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한쪽에서 말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프랑스 할아버지들이 와인 한잔, 아니 몇 잔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레스토랑 안을 채우는 웃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꼬부랑꼬부랑 프랑스어가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다. 나는 전채로 에스까르고, 메인으론 오리다리고기요리, 후식으론 푸딩을 주문했다. 


 음식은 차례차례 순서를 지키며 하나씩 나왔다. 먼저, 전채로 시킨 에스까르고가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달팽이 요리였다. 순대를 좋아하고, 곱창을 좋아하는 나로선 큰 도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게다가 먹는 방법도 몰랐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레스토랑 직원이 어떻게 먹는지 손짓을 이용해 알려주었다.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는 처음 보는 모양의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첫 시도치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입. 음식 맛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달팽이니까 뭔가 미끄덩거릴 것 같았는데, 쫄깃하고 고소했다. 이날, 난 처음 먹은 에스까르고에 반해버렸다. 누군가 내게 “프랑스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뭐야?”라고 물으면, “에스까르고!”라고 단박에 대답할 만큼. 



 눈 깜짝할 새에 6개의 달팽이를 모두 해치우고 나자 메인 요리인 오리다리고기찜요리가 나왔다. 이 음식 역시 한 입 먹은 순간 정말 맛있다고 느꼈다. 같이 나온 감자도 촉촉하고 부드러워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오리다리도 감자도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짜졌다. 그릇 아래에 담긴 소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음식에 점점 배면서 음식을 더 짜게 만드는 듯했다. 아마 음식이 조금만 덜 짰어도, 내가 프랑스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수제 푸딩이 나왔다. 메인 요리의 짬을 느끼함과 달콤함으로 중화할 수 있는 디저트였다.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18유로 50상팀이 나왔다. 에스까르고에 반하게 만들었으니까, 메인 요리는 짰지만 맛은 있었으니까,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내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테르트르 광장에 도착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곳이었다. 몽마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사람들도 물론 예술가지만 테르트르 광장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앉아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들은 파리 시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화가들이라고 들어서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들 말고도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들도 꽤 많았다.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하고 있자니 야외에서 전시회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테르트르 광장 옆에 진짜 전시를 하고 있는 갤러리가 있었다.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전시 같았는데, 잠시 뜨거운 햇볕을 피해 쉬어 가며 천천히 보기 좋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만큼, 여기저기에서 무료 전시를 많이 하고 있었다. 몽마르트를 한 바퀴 도는 꼬마 기차 타는 곳 바로 옆에 있던 성당에서도 전시를 하고 있기에 구경했다. 아까 본 전시처럼,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는 전시였는데, 테르트르 광장에서 만났던 화가들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회화, 조형물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아직은 무명이나, 언젠가 유명해질지도 모르는 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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