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28 Avril 2015
파리에 도착한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집에 들어가기로 한 날은 5월 1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 맘껏 여행자 놀이를 하기로 했다. 같은 민박 같은 방에서 묵던, 함께 밤의 에펠탑을 보러 갔던 동생과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기로 한 나는 그녀와 함께 조식을 먹고 이른 아침 부지런하게 집을 나섰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려면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RER을 선택한 우리는 마치 기차 여행을 하듯 설레는 기분으로 파리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파리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던 기차, 그리고 마치 옛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촤르륵 거리며 돌아가는 기차역의 타임 테이블.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지만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와서 계속 느끼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크다는 것. 그 설렘이 두려움을 이기에 만든다는 것. 그리고 막상 경험해 보면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 한 번도 와보지 않았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용기 내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낯섦을 즐기며 걷고 걸어 베르사이유 궁전에 도착했다.
하지만 분명 낯설어야 하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아쉽게도 너무 익숙한, 파리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긴 줄의 행렬을 보여주었다. 뮤지엄패스를 갖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저 긴 줄의 행렬과 우리는 상관이 없겠지 싶었는데, 우리가 본 그 길고 꼬불꼬불한 줄 중 하나가 뮤지엄패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줄이라는 걸 알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관광객답게(그녀는 진짜 관광객, 나는 임시 관광객) 오후 일정이 빠듯해서, 그녀는 이전 여행 때 와보기도 했고, 나는 오늘이 아니어도 앞으로의 1년 동안 충분히 또 올 수 있을 테니까, 라는 생각으로 짧은 고민 끝에 아쉽지만 다시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은 허기가 채워주었다. 파리로 돌아온 우리는 미리 점심을 먹기로 찜해둔 레스토랑이 있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마침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가 구름을 예쁘게 담고 있어서, 그 앞에서 역시나 관광객답게 사진을 한참 찍고는 루브르 박물관 건물과 이어져 있는 카페 마를리(Le Café Marley)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던 카페 마를리는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나는 다시는 혹은 혼자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 같아 관광객답게 작은 사치를 부리기로 했다. 맛있어 보이는 메뉴들 중 한 번 와봤다는 그녀의 추천으로 클럽 샌드위치와 오믈렛, 참치 스테이크에 콜라와 카페라떼까지 둘이 먹기엔 조금 많다 싶을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둘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테이블 위의 접시를 빠르게 하나 둘 비워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88유로 50상팀이나 나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맛있고 즐거웠으므로, 그걸로 충분히 행복으므로, 나는 만족했다.
다시는 혹은 혼자서는 가지 못할 것 같은 처음 생각이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날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었다고. 스쳐 지나간 인연이 되었지만, 누군가와 함께였기에,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었음에,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