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27 Avril 2015
오페라에서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기로 했다. 오페라에 있는 스타벅스는 파리에 처음으로 생긴 곳으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내부 장식 덕분에 1호점이라는 사실 외에도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앤틱한 가구와 샹들리에, 수많은 여행자와 파리지앵들이 커피 한 잔에 쉬어 가기도 일을 하기도 하는 곳. 비가 와서 그런지 축축한 공기에 둘러싸여 더욱 오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그곳에서 나도 다른 이들처럼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구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파리에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기다리다니, 새삼 참 신기하다고 느끼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언니가 왔고, 배가 고픈 우리는 곧장 밥을 먹으러 갔다. 밖은 여전히 얇은 빗줄기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언니는 빗줄기 사이로 오페라에 대해 그리고 이 거리와 저 거리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었다. 언니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오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 밥집 에이스 벤또. 메인 메뉴 한 가지와 반찬 다섯 가지를 고르면 되는 도시락 스타일 밥집이었는데, 밥도 맛있고 가격도 9유로 정도로 꽤 저렴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가게는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신기했던 건 한국인들 말고도 익숙한 듯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 파리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한국인으로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파리에서 한국 음식이 생각날 때 종종 오면 좋을 것 같아 위치를 다시 한번 잘 기억해두고, 밥집에서 나와 내가 살 동네로 향했다. 은행 계좌를 열어야 하는데, 어느 곳에서나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파리에서는 보통 자기가 사는 동네의 은행에서 계좌를 만든다고 한다. 한국과 전혀 다른 시스템에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프랑스어도 거의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이번에도 언니가 한 번 더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헝데부(약속)를 하지 않고 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로 은행 계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은행 담당자는 중년의 프랑스 아저씨가 되었는데, 프랑스어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집 보험도 학생이 아니지만 학생 가격으로 저렴하게 들고, 은행 계좌도 막힘 없이 열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돈을 찾고 뽑으려면 카드가 꼭 있어야 하는데, 카드는 서류가 통과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일주일쯤 걸린다고 했다. 당장은 사용할 수 없지만, 계좌 번호는 받았기 때문에, 핸드폰을 개통하고 인터넷을 신청하는 등 다른 일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친절한 프랑스 아저씨와 언니 덕분에 혼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프랑스에서의 계좌 열기를 무사히 마쳤다.
큰 걱정거리 중 하나를 해결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언니와 함께 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언니는 맥주를, 나는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한 것 같다. 비도 그치고 날씨가 좋아져 테라스에 앉았는데,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았다.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또 언제 만날지 모를 언니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같은 민박에 묵고 있는 동생을 만나 밤의 에펠탑을 보러 갔다. 혼자 밤에 에펠탑을 보러 가는 건 무서울 것 같아 미루고 있었는데, 민박집에서 마음이 통한 친구를 만난 건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에펠탑에 도착한 우리는 샹드막스 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마트에서 사 온 치즈와 과자 그리고 와인을 꺼내 마셨다. 밤의 에펠탑을 바라보며 공원에 앉아 즐기는 피크닉이라니, 정말 꿈 같았다. 점점 짙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에펠탑은 금빛으로 빛나다 9시가 되자 반짝이기 시작했다. 처음 본 반짝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아쉬운 건지 바람이 꽤 쌀쌀하게 불어 왔지만, 추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분위기에 취해, 빛에 취해, 파리에 취해 추운 줄도 모르고 공원에 앉아 에펠탑을 한참 더 바라보다 돌아왔다. 정.말. 행복했다.
파리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꿈이었고, 꿈 같았고,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