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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ada Aug 07. 2017

오키나와 소바

키시모토 식당

점심을 먹으러 키시모토 식당에 갔다.


전날 공항에서 먹은 오키나와 소바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키시모토 식당은 유명하고, 책에도 실렸으니까. 한 번만 더 오키나와 소바를 먹어보자고 해서 갔던 곳.



뚜벅이 여행자였던 우리는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키시모토 식당까지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해양박공원 입구에 서 있던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탔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택시 아저씨는 '키시모토'라는 단어만 듣고도 우리가 어디에 가려는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해양박공원에서 키시모토 식당까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택시요금은 980円이 나왔다.


한창 점심때인 1시 경이라 그런지, 키시모토 식당에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현지인들까지 다양한 국적의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 소바를 먹기 위해 뜨거운 태양 볕 아래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도 걱정 반, 설렘 반을 갖고 그 줄에 합류했다. 테이블 회전율이 좋은 건지, 생각보다 금방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식당 밖, 입구 옆에 있던 조그만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고 허름해 보이지만 키시모토 식당은 3대째 이어 내려오며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곳이다. 워낙 유명해서 일본 TV 프로그램이나 해외여행 책자 등에도 많이 소개되었고,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이 다녀갔다. 식당 안 한쪽 벽면에는 그런 연예인들의 사인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또 다른 벽 쪽에는 고등학교 시절 매점 입구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음식을 담은 그릇과 빈 그릇들이 오고 갔다. 가게 밖에서 줄 서 기다릴 때, 주방 쪽에 나 있는 창문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분주한 움직임들에 비해 청결한 게 인상 깊었다.



키시모토 식당의 메뉴는 단출했다. 입구 위 나무 판에 쓰여 있던 소바 大(650円), 소바 小(500円), 쥬우시(영양밥, 250円) 이 세 가지 메뉴가 전부였다. 그나마 하나는 大자를, 또 하나는 小를 뜻하는 것이니, 메뉴는 세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인 셈이다. 우리는 평소 같았으면 소바 大를 시켰겠지만, 전날 공항에서 먹었던 소바의 악몽이 가시지 않아, 각자 소바 小자를 시키고 쥬우시 한 개를 함께 먹기로 했다. 얼마 후, 음식이 나오고 소바를 한입 먹은 순간, 우리는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공항 소바와는 비교도 안 되는 쫄깃쫄깃한 면의 식감과 담백한 국물이었다. 우리는 추가 주문이 되지 않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릇을 깨끗이 비워갔다. 맛만 볼까 하고 시킨 쥬우시는 우리나라 약밥 같은 거였는데, 이 역시 많이 달지 않고 담백해서 무척 맛있었다.


어딘가를 여행하고 다시 그 나라에 가고 싶은 건 역시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먹었던 음식 때문이지 않을까. 음식의 맛에 그날 그 시간의 공기, 분위기, 소리, 냄새가 섞여 선명한 기억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날 그 시간의 공기, 분위기, 소리, 냄새는 남아 있지 않겠지만, 그날의 맛은 여전하겠지. 키시모토 식당의 소바와 쥬우시를 먹으러 오키나와에 꼭 다시 가고 싶다.



키시모토 식당

きしもと食堂
Okinawa-ken, Kunigami-gun, Motobu-chō, 本部町Toguchi, 5
+81-980-47-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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