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01 Mai 2015
5월의 첫날. 민박집을 벗어나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날이 너무 좋더니, 하필이면 이사하는 날 비가 왔다. 30킬로의 이민 가방과 기내용 캐리어 하나, 그리고 노트북 가방과 샴푸니 스킨이니 들고 오기 번거로워 파리에 오자마자 산 몇몇 가지 것들까지, 이 빗속을 뚫고 이 짐들을 다 어떻게 들고 가야 하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 그 자체는 좋았다. 비 오는 날 이사를 하면 잘 산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 말이 비가 오는 날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말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다행히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했다. 민박집에 2주나 머물면서 서로 어느 정도 정도 들었고, 무엇보다 민박집에서 '우리 집'까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다. 나는 앞뒤 따질 것 없이 그 감사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인아줌마와 이모가 차려준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는 연식이 오래됐지만 많은 짐을 싣고도 멀쩡한 주인아저씨의 차에 올라타 '우리 집'으로 향했다.
빗속을 얼마간 달려 도착하니, '우리 집'에 살고 있던 그녀가 마중나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사람 두 명만 타도 꽉 차는 엘리베이터에 짐과 나를 욱여 넣고 5층 버튼을 꾹 누르더니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그러고선 본인은 쿨하게 계단으로 향했다. 철커덩, 하고 옛날 영화에서만 보던 접이식 문이 닫혔다. 새로운 세계로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는 5층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와 거의 같은 속도로 5층에 도착한 그녀는 파리의 엘리베이터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수동식 문을 잡아 열어주었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전에 한 번 와보긴 했지만, 그때는 남의 집이었고 이제는 '우리 집'이어서 모든 것들이 다시 새롭게 느껴졌다. 지붕 바로 밑 화장실도 없는, '우리 집'이라기 보단 '우리 방'으로 불러야 할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지만,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춰져 있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 씻을 수 있는 욕실과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 로프트로 되어 있는 침대와 그 아래 앉아 쉴 수 있는 쇼파(쇼파는 그녀가 새로 이사 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내게 주고 갔다), 테이블, 그리고 커다란 창문.
나의 파리와 파리의 나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그 작은 방에 있었다. 그 창문으로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들자, 나는 나의 작은 방이 더이상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주인은 같은 건물 2층에 살고 있었다. 프랑스어도 잘하지 못하는 한국인 여자애에게 집을 빌려준 집주인이 고마웠고,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꽃을 사서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다. 5월 1일이 프랑스 노동절이라 식당이든, 마트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는데, 다행히 역 앞 꽃집 하나가 문을 열고 은방울꽃을 팔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노동절에 은방울꽃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준다고 한다. 나는 꽃집에서 5유로짜리 은방울꽃을 두 개 사서 나왔다. 하나는 집주인에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는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를 위해.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꽃이 앞으로 내게 행복만 안겨줄 것 같았다.
은방울꽃과 첫 월세를 들고 집주인 집에 갔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휴일을 맞아 가족들끼리 놀러 가신 모양이었다. 이때는 몰랐는데, 집주인 분들은 종종 집을 비우고 가족들끼리 여기저기 놀러 다니셔서 본의 아니게 월세를 늦게 내야 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은방울꽃과 월세가 든 봉투를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가지고 있던 긴장이 탁, 하고 풀리더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냉장고에는 먹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와 은방울꽃을 샀던 꽃집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마트도 문을 닫았고, 먹을 만한 것을 파는 곳이 있을까 싶었는데, 꽃집 맞은편에 피자를 파는 푸드트럭이 하나 서 있는 걸 좀 전에 봐두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지, 아니면 음식을 해먹기 귀찮은 것인지, 피자를 사기 위한 사람들이 푸드트럭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나는 고심 끝에 4가지 치즈 맛 피자 한 판을 주문해 집으로 들고 왔다. 혼자 먹기 버거울 것 같았지만, 조각으로는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피자 상자 뚜껑을 여니, 피자가 너무 뜨거웠는지 4가지 맛 치즈가 서로 엉켜 흘러내리고 있었다. 왠지 식욕을 뚝 떨어뜨리는 비주얼이었지만, 나는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허겁지겁 피자를 목구멍으로 넘겨 삼켰다. 다행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피자는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고, 결국 나는 피자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남긴 피자를 보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앞으로 이 쓸쓸한 기분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 같았다.
방 한쪽에 놓인 은방울꽃 때문이었을까.
'그래,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지.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틀림없이 행복해질 거야'
쓸쓸함 속에 다짐 같은 혼잣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