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bada Mar 05. 2017

미테랑 도서관

Le 29 Avril 2015



 고등학교 때, ‘무슨 대학교에 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나는 무슨 과에 가고 싶어, 무슨 학교에 가고 싶어라는 답을 하기도 했지만, ‘도서관이 좋은 학교’라는 답을 때때로 하기도 했다. 책에 푹 파묻힐 수 있다면,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파묻혀 책을 읽고 또 읽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책을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다면. 그런 생각들을 자주 하던 때였다. 지금은 책에 파묻혔다가는 그 무게에 못 이겨 영영 책더미에서 못 나올 것 같고, 죽을 때까지 절대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으며, 또 모든 책이 좋은 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조금은 슬프고 메마른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 냄새가 좋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좋고,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놀러 다니느라 바빠서 프랑스어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 년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일도 구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에 조금 불안해진 나는 파리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파리에 있는 도서관들 중 집에서 버스로도, 트램으로도, 메트로로도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 미테랑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트램을 타보기로 하고, 공부할 책과 일기를 쓸 다이어리, 색색의 펜들과 노트북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조금 늦은 오후였고, 길에 사람은 많지 않아 한적했고, 햇살은 좋았다. 집에서 트램 정거장까지 생각보다 조금 멀었지만,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처음 타보는 트램은 메트로보다 고요했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미테랑 도서관 역에 내려서 한참 또 걸어야 했고, 이것저것 가득 담은 가방은 어깨에서 자꾸 흘러내렸지만, 나는 파리의 트램도, 도서관도 첫 경험이라 싫은 것 없이 설레기만 했다. 


 도착 하고 보니 5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고, 5시부터는 도서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나는 쇼파에 앉아 5시가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공부하는 학생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도서관 한쪽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과 책을 읽으려고 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도서관 곳곳에 책 냄새와 섞여 있었고, 나는 그 냄새들이 왠지 좋았다. 오후 5시가 되고, 나는 매표소에 가서 무료 이용권을 받아 그 냄새들에 섞여 열람실로 들어갔다. 1층과 2층의 빼곡한 책들 사이,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나는 그 중 햇볕이 가 닿지 않는 구석에 조용히 자릴 잡고 앉았다. 나는 햇볕이 좋았지만, 프랑스어 초급 책을 펼쳐 놓기가 왠지 부끄러워져서, 그런 부끄러움이 햇볕에 낱낱이 드러날 것만 같았고, 그래서 햇볕이 가 닿지 않는 구석이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가끔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리 말고는 고요해서, 나는 그 고요함 속에 단어 몇 개와 문장 몇 개를 외우고, 때때로 일기도 쓰고, 낙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도서관이 문 닫을 즈음 나는 그 고요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돌아갈 때는 올 때와 달리 메트로를 탔는데, 14호선인 비빌리오떼끄 프랑수아 미테랑역 역시 오늘 탄 트램과 오늘 갔던 도서관처럼 처음이었다. 


 앞으로 파리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처음을 겪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처음이 있기를, 그 처음을 내가 알아볼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처음을 놓치지 않기를,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그런 생각을 되뇌이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괜찮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