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청했던 장기이식증서가 왔다.
조직부터 장기까지 모두 기증하기로 했다.
장기를 기증하면 아홉 명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장기이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아홉명이 더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사실 요즘 행복이란 걸 느끼지 못하고 산다.
일상에 치이고 희망도 없이 살아나가는 하루하루를 고통으로 견디고 있다.
이상적인 삶과 거리가 너무 멀어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살아왔는데
참 행복하지가 않다. 그래서 미리 그 아홉사람에게 나의 장기를 주는 상상을 한다.
그들은 나의 몇 배로 행복하게 살겠지,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상상일 뿐인데도 뿌듯해진다.
죽음을 준비한다.
언제든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후회없이 삶을 살다 마감하고 싶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그 순간에 느낀 것이 바로 '이렇게 비극으로 죽기는 싫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앙금만 남은 채로, 생에 감사하지도 않고 그렇게 죽기는 싫었다.
물론 가벼운 외상과 조금의 트라우마만 남는 사고였지만, 그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의 때는 아무도 모르니, 한톨의 후회도 남기고 살지 말자고.
그러고선 시간이 흐르니 다시 제자리다.
죽는 그날까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맹세한 일도 그르치고,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말도 거짓말이 된다. 나는 맹세도, 누군가에게 약속도 하지 않았으니 제자리로 돌아와도 인간의 나약함만 탓하면 될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인생의 끝을 준비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유명한 말(늘 죽음을 기억하라)이 있듯이, 나는 나의 죽음을 늘 상기할 것이다.
삶의 속박에서 벗어날 궁극의 방법은 이렇게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일 밖에는 없다.
진정한 자유인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사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