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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준 Nov 17. 2017

[번외] 그림의 눈 1. 미술품 투자의 허와 실

미술품 투자의 허와 실

...이라는 제목은 낚시용 제목입니다. 

제가 허와 실을 말할만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치도 않죠. 제가 구입한 미술 작품이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다만 이래저래 보고 듣고 배운 것도 있고...

더 솔직히는 이번에, 그러니까 연재 분량을 써야 했던 11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상해 아트 페어 참석하느라 근 일주일간 글을 못 썼기 때문에... 핑계 삼아 이렇게 미술품 거래에 정리해 봅니다. 

이번에 갔던 곳은 West Bund Art & Design fair와 Art021입니다.


저도 예술을 좋아하지만, 예술이라는 게, 아니 예술을 떠나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낭만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듭니다. 물론 제가 신사동 가로수길에 한 10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아쉽게도 제 부모님은 그런 건물을 물려주실만한 부를 축적하지 않으셨죠. 


여기에는 예술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들도 낭만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어쨌든 입고 자고 먹어야 합니다. 우리네 삶이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삶이란 숨 쉬는 것조차 돈과 연관되어 있죠.

세금을 내다보면 더욱 절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쨌든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때 예술가들이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흔하게는 대학이나 초중고등학교, 그도 아니면 학원에 출강을 하는 방법이 있죠.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은 무척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 외에는 외주를 받아 작업을 하거나 혹은 취직을 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정작 작업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의 경제 활동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작업 자체가 돈이 되는 것입니다. 작품이 팔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만만치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은 열악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미술품 거래 규모는 총 406,515,000,000원입니다. (www.k-artmarket.kr기준) 써 놓으니까 많아 보이네요. 하지만, 세계 10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경제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는 무척 작은 수치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미술거래 시장은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죠.

미술 시장의 거래 비중은 원래 미국, 영국, 프랑스 순서로 견고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이 견고한 시장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죠. 2006년, 중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는가 하면, 2008년에는 영국이 미국을 넘어 1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1년 3월에는 드디어 중국이 전 세계 미술품 거래량의 1위에 올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 미술시장은 줄곧 호황기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먹구름이고요. 


Art021 서쪽 입구


호황기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미술 시장의 호황기와 불황기에는 거래되는 미술 작품의 종류나 성격도 다릅니다. 


미술품 시장이 호황기에는 현대 미술품의 거래량이 압도적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단기간에 뜰 작가에 투자하여 시세 차익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주식도 그러하지만, 호황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적인 현대작품에 투자를 하여 뜨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이때에는 안정적인 거장들의 작품보다 가격 편차가 비교적 심한 작품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즉 미술 시장이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던 2006~2007년 사이에는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가 고흐보다 더 인기가 많았었죠. 


그러나 불황기에는 콜렉터들이 다시 고흐나 모네, 피카소의 작품에 주목합니다. 호황기에 현대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폭발적으로 증가 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이 작게 느껴졌던 작품들이죠. 하지만 주식도 불황기에는 모험적인 투자보다 안전투자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이런 우량주를 선호하게 됩니다. 


경제적 불황기에는 미술품의 구매 수요도 확실하게 줄어듭니다. 그런데 불황일수록 호황기에 구매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여러모로 주식시장과 비슷하죠. 그러나 불황에 그림을 사는 것은 호황기에 그림을 사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호황기에는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을 1차 시장(작가에게 바로 구입하는 시장)에서 구하는 것 자체가 행운입니다. 1차 시장과 2차 시장(갤러리), 3차 시장(경매) 사이에 가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술시장이 호황기일 때는 1차 시장에서 작품을 구입한 후 단기간에 2차나 3차 시장에서 판매하여 차익을 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주식 단타 투자와 똑같습니다. 


하지만 불황기에는 상황이 조금 바뀝니다. 1차 시장 가격이 2차, 3차 시장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1차 시장 가격은 시장의 상황과 별 상관없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가의 가격이 한 번 호당 얼마라고 책정되면 그 가격이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유통 시장이라고 할만한 2, 3차 시장 가격은 경제상황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하죠. 


이처럼, 미술시장의 가격은 경제적 상황,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무척 많은 영향을 받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가격이 책정 되는 것은 아닙니다.  


West Bund와 ART021의 출입카드. 소더비에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VIP카드를 받아 프리뷰 기간에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수요와 공급그리고 플러스 알파


모든 것이 그렇듯, 그림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작품의 가치(라고 쓰고 가격이라고 읽는)를 대략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공급 중단 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작가의 사망입니다. 한 작가의 죽음은 그의 작품 세계만 보다면 비극적인 일이지만, 미술시장에서는 그와 반대로 작용됩니다. 작가가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어 공급이 중단된 작가의 작품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높아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일 경매가를 갱신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지만 사망한 작가라고 가격이 다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환기 화백은 생각보다 무척 드문 경우입니다.  작가의 도록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작가가 평생 동안 제작한 작품의 수가 몇 점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향후 가격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백남준 화백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예술가 중 유일하게 세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작품을 만들었던 백남준 화백이지만, 그의 작품은 정확한 도큐멘트가 없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낮게 책정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브라운관 TV가 고장 나면 수리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하느냐에 대한 의견도 아직 분분한 상태라 더욱 그렇습니다.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데도 공급이 중단된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천경자 화백처럼 절필을 선언한 경우이거나, 어느 시점을 계기로 작품 스타일이 완전히 바뀐 경우가 그렇죠. 기존의 작업 스타일이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전제가 확실해지면, 공급은 제한되고, 이에 따라 가격은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더라도 작품 제작 시기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미술품 가격은 작가의 활동이 안정화된 중장년에 제작한 것이 가장 비싸고 노년작은 선호도가 떨어“집니다.(소육영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총괄)


그런데 사망한 작가들의 작품만 미술시장에 나오는 것은 아니겠죠? 공급이 지속되는 동시대 작가의 작품도 시장에서 거래가 됩니다. 그래야 작가들도 먹고 살죠. 이런 동시대 작가의 작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망한 작가의 경우와는 다르게 향후의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 때문에 가격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 외에 몇 가지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 


이번 페어에 몇 안 되는 국내 작가의 작품 중 하나. 박기원 <width117>, 2016

1) 작가의 네트워크

작품은 작가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론, 이때의 “어디”라는 위치는 공간위상학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죠.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 요소가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그가 어떤 갤러리와 같이 일을 하는가입니다. 미술 작품은 작품의 고유 가치도 중요하지만, 외부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데,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갤러리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작가와 계약을 맺은 갤러리가 기존에 어떤 작가들과 같이 작업을 했는지,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신진작가를 키우는 갤러리인지, 이미 자리를 잡은 국내 작가들을 세계적 작가로 키워내고자 하는 갤러리인지, 소속 큐레이터의 역량은 어떠한지, 관계하고 있는 비평가 집단은 또한 어떠한지 등이 무척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작가는 혼자 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혹은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로 풀어내줄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확산시킬 능력이 없다면 작품은 홀로 덩그러니 먼지만 쌓여갈 뿐입니다. 

이때 그 작품을 해석해 주는 존재가 큐레이터나 비평가이며, 그것을 널리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은 갤러리입니다. 그리고 그 작가의 보증을 해주는 것도 바로 갤러리의 위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갤러리는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갤러리가 전부는 아닙니다. 우선 작품이 좋아야함은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갤러리의 테두리를 넘어야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죠. 


우리나라 미술 시장은 작습니다. 작품은 필연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해외 딜러와 비평가들의 견해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해외 컬렉터들의 반응을 좌우하며, 이는 미술작품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이번 페어에 유일하게 참여한 국내 갤러리인 아라리오 갤러리 부스 


2) 작가의 이력

두 번째는 작가의 이력입니다. 그 작가가 어떤 전시를 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전시를 진행하려고 하는지, 또한 어떤 갤러리나 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했었는지도 확인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1)의 요소와도 연관이 있는 것인데, 간혹 도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이력을 자랑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전시 이력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작품의 질과 직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보다 질이죠. 


어떤 전시를 어디에서 누구와 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런 설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함은, 어떤 성역 같은 느낌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죠. 예술은 경제원리, 자본의 잠식에서 벗어나 고고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의 미술 시장은 이렇습니다. 상호보완적인 관계이죠. 



3) 컬렉터

예술은 낭만적이지만, 작품의 가격이 책정되는 것은 별로 낭만적이지 못합니다.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컬렉터입니다. 누가 이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였고, 소장하고 있는지가 작품의 가치 결정하기도 합니다. 어느 기업의 누가 어떤 작품을 구입했다든지, 연예인 누가 소장하는 작품이라든지 하는 이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의 컬렉터란, 미술 작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냐 하는 점입니다. 

미술 작품 가격은 일반적인 상식선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한 고가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길거리에서 악세서리 고르듯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천문학적인 액수의 작품을 구매하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나서도 긴 시간 숙고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상식이죠. 여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지 못하는 어두운 정보들도 있겠지만, 우선 총체적인 미술사와 미학, 철학, 경제 등에 관한 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양이 충분히 갖추어진 컬렉터가 누구의 작품을 구입하는지는 그 작가의 다른 모든 작품 가격을 좌우합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이런 작품은 보면 딱 느낌이 옵니다. "아!"하고 말이죠. 


4) 작품성 

마지막으로, 작품성입니다. 

앞서의 설명들로 인해 미술시장이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분명 그러한 부분도 있지만, “미술작품”이라는 상품은 일반적인 상품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술작품에는 교환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소가치라는 것도 존재하죠. 

갤러리나 미술관, 컬렉터, 정부가 아무리 띄우려고 한들, 작품성이 없는 작품은 뜰 수가 없습니다. 이 많은 미술인들이 전혀 의미 없는 작품인데도 누가 좋다고 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갤러리나 미술관, 컬렉터들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띄우려면 그에 상응하는,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작품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작가가 동시대 최고의 작가는 아닐지언정, 기본적인 작품성은 있어야 띄우든지 말든지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무엇보다 작품을 보는 눈이 있어야 미술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아, 맞다. 

그 전에 돈이 있어야 겠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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