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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준 Apr 06. 2018

고시원 생활 수기-던전 오브 고시원

1. 고시원, 시작     


두서없이, 그리고 내키는 대로 써보자면, 서울에서의 첫날은 고시원 벽지에 눌어붙은 검은 곰팡이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무보증에 월22만 원.      

한림고시원.


색 바랜 간판이 덜렁이는 3층 건물은, 첫 월급이 식대포함 90만원 남짓이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지였다. ‘한림’의 ‘ㄴ’이 떨어져 모기업에서 운영하는 “하림고시원”인 줄 알았던, 그래서 뭔가 좀 좋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곳은, 아이러니 하게도 고향의 지명과 똑같았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      


지금은 도로명 주소니 뭐니 알쏭달쏭한, 그러므로 도무지 모르겠는 주소로 바뀌어서 집주소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에게 ‘한림’이라는 단어는 익숙했다. 뭐, 물론 그것 때문에 그곳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월세가 가장 저렴했을 뿐이었고, 쌌을 뿐이었고, 낮았을 뿐이었다. 한 마디로, 그냥 싸서, 싸서, 싸서, 그리고 싸서 선택했을 뿐이었다. 

       

곰팡이 얼룩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에 매달려 있던 죽음꽃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 고시원의 이름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낡고, 촌스럽고 지저분했던 것도 그렇고, 한림고시원은 고향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아무튼, 서울에 올라온 첫날, 이끼처럼 핀 천정의 곰팡이 자국을 보면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라던 릴케의 말을 잠시 떠올려 보기도 했다.


물론, 릴케의 책을 읽은 적은 없었다. 


그저 그 대목만 기억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잠시 떠올렸던 것일 뿐이었다. 


나도, 어쩌면 도리어 죽기 위해 이곳에 흘러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만큼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춥고, 음습했고, 눅눅했고, 막연했고, 황망했고, 어두웠다.         


내가 평수를 가늠하는 법을 배운 것도 고시원에서였다. 

다리를 펴고 누우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넓이의 방이 한 평 반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 이후에는 웬만한 곳은 대충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다. “가로세로 몇 발자국” 따위로 제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몸이 그렇게 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일반적인 화장실의 넓이가 한 평 정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꽤 큰 자괴감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내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이 결국 화장실의 크기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도 괴물의 뱃속 같은 서울에서 가장 안락한 곳 역시 한림고시원 312호였다.

           

312호에 살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옆방에 사는 조선족 커플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어떻게 두 명이 살 수 있는지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8.5밀리미터 두께의 베니어합판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려주었다. 쩝쩝 거리며 뭔가를 먹는 소리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전화 통화를 하는 목소리도, 심지어 핸드폰 너머의 목소까지 들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젊은 남녀의 기타 등등....

아무튼 보는 것보다도 적나라하게 그들의 모든 것을 들춰 보여줬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그 건너편인 310호 거주인과 친해지기도 했었다.

공동의 적이 형성되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고시원 휴게실에서 우연히 라면을 같이 끓여먹게 되며 친해지게 되었다. 


“먼저 받으세요.”


컵라면에 붓는 뜨거운 물이 마치 조니워커 블루 라벨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심 쓰듯 양보하며 건낸 말이 그와 내가 처음으로 나눴던 대화였다. 

생각해보면, 심지어 그 물은 자기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고시원에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모종의 동질감에서 비롯된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몇몇은 형님 아우하고 있었고, 몇몇은 사장님 검사님 소리를 하고 있었다. 호칭만 들어봐도 삼박 사일짜리 레파토리가 자연적으로 떠올랐다. 물론, 그다지 긍정적인 레파토리는 아니었다.        


310호는 그 당시 서른 중반쯤 되는 사람이었는데, 정확한 나이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데 줄였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이건 고시원에서 장기투숙자를 만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인데, 그들은 자신의 나이를 그다지 솔직하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뭔가 다툼이 있을 때는 78년생이었던 사람이, 시험이나 기타 등등 어떤 사회적 기준에 적용될 대는 82년생이 되기도 하였다. 


310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 보면 간혹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할 때가 많았고, 나이 또한 그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나는 그런 310호 덕분에 고시원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허옇게 부스러지던 뺨을 오물거리며 한탄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던 310호를 보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 저 인간처럼 되지는 말아야겠다’였다.     

 

아무튼, 310호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하다면 파란만장하달까? 

정확히는 파란만장하게 한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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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생활 수기-던전 오브 고시원>은 제가 예전에 블로그에 간간히 올렸던 제 옛날 기억을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한 동안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는데 재미있게 봐주셨던 분들의 요청(?)으로 다시 다듬어 올리는 김에 이렇게 브런치에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비정기적입니다. 


P.S. 이 글이 그림의 말 철학의 눈에 있는 이유는, 제 글과 그림의 시작이 여기에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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