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 키머러 지음(24년 10월 24일 모임, 박샘 추천)
다시 그 책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은 대개 책과 상관없는 곳에서 온다.
산책하다가 풀 냄새를 맡을 때라든지, 뉴스 기사 속에서 ‘자원’이라는 단어를 볼 때라든지,
아무 생각 없이 흙 묻은 신발을 벗을 때 같은 순간들.
딸들의 어린 시절 사진 속 촘촘히 땋인 머리칼에서 내가 쏟았던 정성의 흔적을 발견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향모를 땋듯, 나 역시 아이들의 시간을 정성껏 땋아 내려가고 있었나 보다.
이렇듯 내 삶의 결들과 겹쳐져서일까. 『향모를 땋으며』를 생각하면 표지에 그려진 초록색 매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24년 벌써 햇수로 2년 전이되어 버린 10월의 우분투에서 우리는 『향모를 땋으며』를 읽었다. 초록색 매듭과 같이 기억에 남는 건 작가 로빈 윌 키머러가 북미 원주민의 후예였단 기억이다. 생태학자인 그녀는 '과학적 지식'과 '원주민의 지혜를' 이 책에 표지처럼 땋아낸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설명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만 오래 함께 살아온 존재들을 대하듯 자연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준다. 조곤 조곤, 다독이면서.
식물학자의 언어와 원주민의 이야기들이 다른 듯 하나로 향해 나란히 걷고 있지만 서로를 먼저 내세우지 않는 느슨함으로 인해 이 책에 빠져들게 된다.
책 전반을 통해 작가는 자연은 자원을 제공하고 인간은 감사와 절제 그리고 요즘 대두인 돌봄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은 소비의 대상이 아닌 선물의 순환 속에 있는 선물 경제로서의 자연을 이야기하며 그녀는 그 선물이 얼마나 귀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서점의 이름인 '우분투(Ubuntu)'가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어서였을까. 10월의 서늘한 밤공기를 뚫고 모인 우리는 네모랗게 둘러앉아 자연이 있기에 우리가 있음을 이야기했음이 기억난다.
서구 사회는 자연을 자원이란 이름으로 관리하고 소유하는 존재로 말하고 있음을 키머러는 원주민의 언어를 통해 조용히 되묻는다.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우리가 자연에게 말을 것 수 있다면, 파괴는 지금과 같을까?"
이 질문으로 책은 환경을 넘어 윤리와 세계의 문제로 넓어진다.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에 대해 "더 나은 기술" 보다 "더 나은 인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겸손과 감사의 훈련으로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말한다.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잃어버린 '감사하는 법'을 회복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로
『향모를 땋으며』는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이라기보다 그날의 공기와 함께 초록이란 것들을 보면 기억되는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