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핀드 비강 지음 (24년 9월 20일, 책방지기 추천)
『고마운 마음』은 말하지 못한 감사와, 너무 늦어버린 말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은 한창 더웠을 9월, 한때 가을의 대명사로 불리던 9월과 10월이, 이제는 여전히 덥다는 말로 시작되는 계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던 선풍기와 에어컨에게 감사하며,
소설가 구병모는 『고마운 마음』책의 뒷표지에 이렇게 글을 걸어 두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도 책의 힘을 믿으며 책으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이 누군가에게 책과 한 통의 편지로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마지막 희귀 인류에 속한다면, 여기 그에 적합한 책이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나 선물이에요.라고 말한다. "
(구병모_소설가)
구병모 소설가처럼 고마움을 책으로 전하고픈 이들에게 추천한 이 책의 중심에는 노년의 여성 미쉬카 그녀를 돌보는 젊은 여성 마리, 그리고 언어치료사 제롬이 있다.
미쉬카 할머니는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다. 가족과는 멀어졌고, 사회에서도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미쉬카는 오래도록 타인의 삶을 조용히 떠받쳐 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웃 아이를 돌보고, 불안정한 시기의 누군가에게 잠시 머물 곳이 되어주며, 도움을 주고도 보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한 발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좋은 시기란 결코 없는 거야."(88p)
노년에 접어들면서 미쉬카는 점점 언어를 잃어간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문장은 중간에서 멈춘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그 마음이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요양시설에 들어가 언어치료를 받게 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그녀의 곁에 머문다. 언어치료사 제롬과, 미쉬카를 돌보는 젊은 여성 마리. 마리는 과거 가장 불안정했던 시절, 미쉬카에게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다. 미쉬카는 그 시절의 마리에게 집을 내주었고, 말없이 곁에 있어주었다. 그 시간은 마리에게 분명한 구원이었지만, 정작 “고맙다”는 말은 끝내 전해지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 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126p)
이제 역할이 바뀌어,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된 두 사람 사이에는 말해지지 않은 감사가 고여 있다. 미쉬카는 말을 잃어가고 있고, 마리는 이제야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졌지만, 그 말을 건넬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언어치료사 제롬은 미쉬카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게 된다. 그녀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언어 능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설명하고 기억될 권리라는 사실을. 말이 사라질수록, 미쉬카의 삶은 점점 타인의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미쉬카만 제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건네며, 잃어버리고 있던 말을 서로에게서 되찾는다. 고마움을 전하는 방식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것을 실제로 건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관계는 조용히 보여준다.
"말들은 상처를 받아요. 지워지지 않아요. 뭐든 판단하려 들고, 약점만 찾던 시선. 협박. 이런 것들은 상처를 남긴다고요. 정말로요. 그러고 나면 저 자신에게 신뢰를 가지기가 어려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힘들어요(173p)
이 소설에서 ‘고마운 마음’은 따뜻한 감정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못해 쌓인 마음이고, 너무 늦어서 더 무거워진 감정이다.
"때로는 상실이 남길 허무를 책임져야만 한다."(148p)
너무 늦어서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상실이 남길 허무의 책임이 커지기 전에.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구병모 소설가의 권유처럼 이 책 한 권으로 조심스레 건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