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세상이 공평할 거라고 믿었다. 노력하면 보상받고,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그런데 살아보니 현실은 달랐다. 세상은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혹했고, 쉽게 짓밟혔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벽 앞에서 좌절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좌절'했다'가 아닌 좌절'당했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상을 바꾼 건 언제나 그 약자들이었다.
역사를 보면 언제나 강자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든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성벽을 세운 사람들, 권력을 휘두른 왕과 지배자들. 하지만 그 성벽을 허문 것도, 세상의 규칙을 바꾼 것도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이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대, 그 권리를 쟁취한 건 약자였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던 시절, 바닥에서 싸운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8시간 노동제를 가질 수 있었다. 독립을 외치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 차별을 깨부순 사람들, 제 몸 하나 간신히 지탱하며도 세상을 바꾼 사람들. 그들은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약했고, 쉽게 쓰러질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흔들리고, 넘어지고, 때로는 나아갈 힘조차 없을 때가 많다. 세상은 냉정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힘을 가져야지", "이러라고 권력을 쌓는 거야"
그 말을 들으면 마치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부족해서, 더 강해지지 못해서, 이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말들 속 세상이 말하는 강함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저항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순응하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고, 참고 견디는 것이 성숙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꿔온 건 언제나 '참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건 부당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건 틀렸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약자가 싸울 때는 늘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더 많은 걸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싸움이 끝나고 나면, 세상은 조금씩 변해 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꾼 건 매번 약자였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그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아직은 저항에 순응하는 미덕을 성숙이라고 큰소리치는 강자들의 압박에 주눅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약자의 자리에 잠시 앉았다 온 하루를 반성해 본다.
그리고 언제쯤 틀린걸 틀렸다 아닌걸 아니라 말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