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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Diver Nov 20. 2024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아동 청소년 문학 작가들은 개개인의 개인사업자와도 같지만, 서로의 글을 공유하며 토론하고 비평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흔히 말하는 ‘요즘 트렌드’를 이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아동 청소년 문화를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공감 능력을 넓히고, 다양한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문학의 깊이를 더해준다.


하루는 청소년 소설 비평 모임에 참여했다. 줌을 통해 만난 작가들과 선생님들은 네모난 화면 속에 바둑판처럼 모여 있었다. 코로나 이후 익숙해진 온라인 모임이었지만, 모두가 비평 대상이 된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공유하며 풍성한 대화를 이어갔다. 비평 대상은 이슈가 되는 청소년 소설로, 논의가 깊고 길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나는 예상치 못한 화가 치미는 말을 듣게 되었다. 비평 대상이 된 책 속에 가난한 엄마가 딸에게 겨울 점퍼를 사주기 어려워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 작가가 “요즘 세상에 겨울 점퍼 하나 못 사줄 만큼 가난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왜 그 말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몰랐다. 생각해 보니, 그 작가가 “그런 삶도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그럴 리 없다”라고 단언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에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삶이 존재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아동 청소년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라면,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삶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그날 화가 난 상태로 시 쓰기 과제를 제출했다.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시는 “너무 직설적이고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보니, 화와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 채였다. 어쩌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던 탓일지도 모른다. 쪽방촌에 살던 친구의 집, 병상에 누워 있던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도 친구와 함께 놀고 싶어 했던 친구들. 나 역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아프지 않으셨다는 점만이 달랐던 기억들이 겹쳐졌던 것이다.


내 시를 읽고 누군가는 그것을 ‘저항시’라 불렀다. 그 말을 듣고 나의 글이 세상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저항으로 읽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느낀 화를 글로 분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화자의 감정만 드러나는 글은 독자와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평자가 말했던 “시적 화자가 스스로 너무 뜨겁다는 것은 사람들을 웃기려는 개그맨이 먼저 웃어버리는 일과 비슷하다. 뜨겁고 거칠되 내가 아닌 시를 읽는 이를 뜨겁고 거칠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안에 함몰되어서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는 조언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내 감정을 단순히 쏟아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라면 특히 그렇다. 나 역시 공감의 폭을 넓히고,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의 글을 써 내려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해와 공감을 통해,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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