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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Diver Nov 09. 2024

전 밥알이 아닙니다

동시를 쓰게 된 계기는 그림책이 좋아서였다.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며 독박 육아에 지칠 때, 그림을 그릴 시간은 없고 대신 그림책의 글을 지어 보며 동시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동시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동시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짧은 시간에 적합한 형식과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긴 글이 아닌 단편 단편의 매력이 나에게 딱 맞았다. 매번 다른 소재와 주제로 글을 짓다 보면, 글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여러 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게 되고, 어린이 문예지에 등단하게 되며, 조금씩 나라는 존재를 동시를 통해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동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자비출판을 하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된 출판 지원을 받거나 신인상 응모를 통해 첫 책을 출판하고 싶었다. 그렇게 꾸준히 신인상 응모도 하고 투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뒤늦게 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를 짓거나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졌고, 엄마이자 아내, 딸, 며느리, 그리고 학생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지면서 작가라는 프리랜서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 무렵, 동시를 쓰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동시작가로 같은 분과의 글을 쓰고 엄마이고 아내로 그리고 학생으로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분이기에 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준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고민이 드러나곤 했다. 동시를 쓰면서도 책 한 권 내지 못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작아지는 나 자신. 마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작가인 박완에게 책 한 권 없다고 작가냐고 묻던 장면처럼, 나 역시 책이 없다는 이유로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등단도 하고 지원도 받고 여러 문예지에 글도 실렸지만, 이러다 그냥 가라앉아 없어질 것 같아요." 그렇게 말했을 때 그분은 한껏 큰 소리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샘? 샘은 뜬 적도 없어. 뜬 적도 없는데 가라앉을 것도 없어. 뜬 적이 있어야 가라앉지!"


그 말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위로였다. 그분은 원래 직설적인 성격이라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이지만 자존감 없는 내게는 상처로 다가왔다. 그분은 항상 진심으로 나를 격려해 주었기에,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또 큰 곳에서 신인상을 받아야 한다며, 아무 데나 막 투고하지 말고 제대로 된 원고로 투고하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족하더라도 투고하고, 부족하더라도 피드백을 받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나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따로 아동문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다른 이들처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선생님도 없었다. (가끔 본인의 제자가 문예지에 실리게 되거나 신인상 투고에 선정되었을때 그들의 선생님(스승)들이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진짜라고 하면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신다. 그런 선생님(스승)이 계신다는 게 난 그게 너무 부러웠다.) 내겐 그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그만큼 나는 모자랐기에 많이 부딪히고 용기내 보는 힘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100% 맞는 말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서 배웠다. 그들은 움직인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투름을 무기 삼아 그 서투름을 채워 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움직여야 바람이 인다. 바람이 일어야 씨앗들이 퍼질 수 있다.


비록 늦었을지라도, 비록 여전히 부족함이 남아 있을지라도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동시집이 나왔다. 그분은 또다시 말했다. "이제는 동화로 큰 곳에서 신인상을 받아야 해." 예전엔 그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를 생각하며 해준 진심 어린 조언이었. 본인이 겪은 아쉬움이 나에게는 남지 않기를 바랐던 것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동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나의 첫걸음이라면, 그다음 걸음은 지금부터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일지 모른다. 나이는 중년에 속하지만 마음만은 젊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서툴지만 진솔한 글을 통해 나 자신과 독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한 발짝, 그리고 또 한 발짝 내디뎌보려 한다. 나는 밥알이 아니다. 뜨든 가라앉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작고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는 나의 모든 진심과 노력이 담겨 있다. 그 진심을 알아주고,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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