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교에서 일기장 검사나 깜지가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요청으로 참여한 엄마들의 독서 모임에서 진행한 동시 모임에 참여했을 때, 현실은 다소 다르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깜지 숙제를 하고 있으며, 일부 교사들이 기존의 교육 방식을 고수하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처벌이 허용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깜지와 같은 방법이 아이들에게 반성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참석자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분은 집에서 아이가 잘못을 하면 벌로 깜지를 시키되, 같은 단어나 내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시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참석자들이 놀랐으나, 그분은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확신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휘력 향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법이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해소와 행복, 삶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아동문학에 대한 나의 관심도 이러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글쓰기가 폭력이나 억압, 잘못에 대한 벌로 여겨진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일까?
그 문제는 단순히 교육 방식에 관한 것이 아니다. 가끔 아동문학을 연구하고 싶다고 내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그럼 점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시는 단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니냐며 내게 도전 의식처럼 말을 건네는 분들도 있다. 시의 본질을 설명하라는 요청은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였지만,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어른들의 고집을 감당해야 하는 작은 존재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명확히 표현할 수 없고, 그 자체로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존재다. 그런 아이들에게 말과 글로 어른을 이겨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좌절감을 심어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을 하겠다고 하시며 여러 가지를 묻는 분들은 내게 의문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언어나 논리로만 이해시키려 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휘력 향상을 기대하는 모습. 이러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교육 방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된다.
진정한 배움이란 자신의 지식이 최고라 믿고 이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르더라도 배우며 아이의 행복을 고민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성장과 행복을 중심에 두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