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표범(La Panthère des neiges)』

-실벵 테송(Sylvain Tesson)

by 신서윤

이 책은 그저 눈표범을 보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내용으로 기억난다.

책의 앞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다.


"누구든 사람을 먹이는 자가 그의 주인이다."(35p)


눈표범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었던 잭 런던의 1902년 티베트의 상황을 담았던 표현을 읽으며,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인간과 마주한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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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르포 같으면서도, 사실 위에 자신이 겪은 체험을 덧붙인 다큐 같은 책이었다. 눈표범을 보기 위해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 단순한 동기만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흐릿하다. 책 속의 시간도 책 밖, 나의 시간도.

작년 일이 분명한데, 마치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출처럼 기억이 엷다.


실벵 테송의 문장은 움직음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난다. 기다리고 기다린다 했었던것 같다. 바람이 소리를 지워버리는 고원, 하얀 설원, 인간이 도착하기 어려운 고요 속에서 그들은 눈표범들을 기다렸다. 사건이나 서사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나 또한 멈춘 풍경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 기다림의 체험을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페이지는 넘어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긴장된다. 그 행과 간사이 정적이라는 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날, 작년 5월 16일. 우분투북스 독서모임에서 우리는 이 책을 함께 펼쳐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이 책을 ‘기다림의 태도를 다룬 책’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정적인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체험’이라 말했다. 어떤 이는 “보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고, 또 다른 이는 “기다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날의 대화는 책의 문장보다 오래 남았다.


말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리듬이 있었고, 침묵조차 대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 감각이 지금도 오래 남아 있다. 모임은 늘 그렇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하며 자리에 앉고, 막상 말을 나누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생각과 문장이 흘러나온다. 그 자연스러운 확장은 언제나 신기하다.


실벵 테송은 자연 사진작가 뱅상 뮈니에(Vincent Munier) 의 초대를 받아 티베트 고원으로 떠난다. 목적은 전설적인 은둔자처럼 살아 움직이는 동물, 눈표범을 “기다림”의 방식으로 마주하는 것. 눈표범은 극도로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로, 그 희귀성 때문에 인간에게서 거의 잊힌 ‘야생의 시간’을 상징한다.

테송 일행은 높은 고도, 혹한, 텅 빈 풍경 속에서 오랜 잠복과 관찰을 반복한다. 눈표범을 보기 위한 여정은 단순한 탐색이 아니라, 저자가 스스로의 삶·문명·조급함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그는 인간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침묵과 고요, 자연의 리듬을 다시 배우며,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와 내적 통찰을 기록한다.

여행 중 테송은 늑대, 여우, 야크, 새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만나지만, 눈표범만큼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그는 눈표범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경험은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 전체가 하나의 의미였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눈표범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감각의 회복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결국 이 책은 보는 능력이란 곧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내 평생의 꿈은 내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거였는데!"


첫번째 모임에서 읽었던 『존재하기위해 사리지는 법』이 생각나는 글귀였다. 동물들을 보기위해 자신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으면하는 뮈니에의 말. 누구든 내가 먼저 보였으면을 바라고 나만 봐주기만을 바라는 삶속에서 꿈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이렇듯 기다림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기다림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희귀한 동물을 기다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어찌 보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찌 보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사유가 책 속에서 은유로 남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르포의 형식 속에 스며든다.


"신은 펜의 잉크를 닦기 위해 압지 대신 표범을 사용하셨다." (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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